격무에 시달린 후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귀가했을 때 나를 반기며 인사해주는 꽃이 있다면? 아니면 식구들을 일터와 학교로, 혹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챙겨 보내느라 분주한 아침을 보낸 후 잠시 숨고르기를 할 때 힘 내라고 살며시 미소 지어 주는 꽃이 있다면? 아주 작은 바람에도 대롱대롱 흔들리는 스트렙토카르푸스(Streptocarpus)의 꽃들은 천근만근 자꾸만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을 다시 하늘하늘 가볍게 날아오르게 해준다.
사람의 컨디션이라는 게 기분과 많이 연결되어 있기에 누군가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 있을 때 그 기분을 헤아려 주지 못하면 소용없다. 스트렙토카르푸스는 갑작스럽게 텐션 업을 해주는 꽃이라기보다는 일단은 토닥여주고 어루만져 주는 꽃에 가깝다. 난꽃처럼 우아하게 뻗은 기다란 꽃대 끝에는 한 송이 혹은 두 송이씩 짝을 이루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꽃이 달려 있어, 보는 순간 감탄하게 된다. 밑에 쪽에 낮게 펼쳐진 잎들 사이에는 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꽃망울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이렇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느낌까지 더해져 힐링이 된다.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원시 시대 인류의 조상 때부터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된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꽃이 피면 춥고 배고픈 계절이 끝나고 이제 맛있는 열매가 풍성한 계절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에 저절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스트렙토카르푸스의 꽃도 그렇게 우리에게 늘 좋은 예감을 선사한다.
스트렙토카르푸스는 뒤틀려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 스트렙토스(streptos)와 열매를 뜻하는 카르포스(Carpos)가 합쳐져 ‘뒤틀린 열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열매 모양이 일각고래의 긴 뿔처럼 나선형으로 꼬여 있기 때문이다. 주로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지에 130종이 자생한다. 같은 제스네리아과(Gesteriaceae)에 속하며 오랫동안 반려식물로 인기를 지녀온 식물로 아프리칸바이올렛(Saintpaulia ionantha)과 비슷한 환경, 즉 돌이 많고 다소 그늘진 비탈 또는 절벽, 바위틈에서 얼룽거리는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 살아간다. 주된 서식지, 그리고 앵초와 비슷한 꽃 모양 때문에 ‘뉴질랜드 앵초’ 혹은 ‘케이프 앵초’라고도 부른다. 또 다른 비슷한 식물로 시닝기아 레우코트리카(Sinningia leucotricha)가 있는데 이 식물은 브라질 등 남미 원산이다. 스트렙토카르푸스의 꽃 색깔은 품종에 따라 파란색, 하얀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분홍색, 보라색으로 다양하다. 꽃은 입술 모양이며, 관 모양으로 기다란 통꽃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다. 잎은 주로 납작하고 우둘투둘한 질감으로 주름이 져 있고 두터운데, 자세히 보면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쉽게 기를 수 있다는 점은 이 식물의 큰 장점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프리칸바이올렛보다 더 쉽다. 지치고 피곤한 사람에게 이 부분은 큰 메리트다. 가뜩이나 힘든 하루의 끝에 집에서조차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면 아무리 좋은 꽃이라 해도 귀찮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렙토카르푸스는 초심자, 혹은 소위 말하는 ‘똥손’도 쉽게 키울 수 있어 부담이 없다. 또 한 가지 장점은 꽃이 계속 핀다는 것이다. 밝은 간접광을 좋아하기 때문에 통풍이 잘 되는 동쪽 또는 서쪽 창가의 협탁에 놓아두면 늘 한두 송이씩 대롱거리며 피어나는 꽃을 만날 수 있다. 꽃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비결이 몇 가지 있는데, 먼저 칼슘 성분이 높은 액체 비료를 2주에 1번씩 주기적으로 주면 좋다. 그리고 진 꽃을 밑에서 잘라주면 계속해서 새로운 꽃대가 형성된다. 온도는 전반적으로 낮에는 21도 밤에는 15도 정도 되는 환경이 최적이다. 물은 흙이 어느 정도 말랐을 때 흠뻑 준다. 너무 물을 많이 주어 토양이 축축한 상태로 계속 있으면 밑동 부분이 썪는다. 늘 관심을 두고 사랑하되 물 주는 것만큼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아프리칸바이올렛이 잎 위에 물을 주면 안되는 것과 달리 스트렙토카르푸스는 잎 위에서도 자유롭게 물을 줘도 된다. 하지만 화분 받침에는 물이 고여 있으면 안 된다. 겨울철 최저 온도는 10도 이상으로 유지한다. 그래서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는 가을, 겨울엔 좀더 따뜻하고 빛이 많은 남쪽 창가로 옮겨 주는 것이 좋다. 이 시기 거름은 주지 않고 물도 최소한으로 줄여 준다. 다시 따뜻한 봄이 오면 약간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고 주기적으로 물을 주기 시작한다. 스트렙토카르푸스는 뿌리가 얕고 넓게 형성되기 때문에 깊은 화분보다는 얕은 화분이 좋고, 토양은 배수가 아주 빠르게 되도록 펄라이트와 부엽토, 원예상토를 똑같은 비율로 혼합하여 사용한다.
스트렙토카르푸스의 오래된 잎은 해마다 털갈이하듯 절반 정도가 갈변하며 시들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잎은 아주 강건하게 오랫동안 유지된다. 이러한 잎은 번식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데 이 역시 아프리칸바이올렛과 비슷한 부분이다.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잎을 5센티미터 정도 간격으로 잘라 토양 속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로 꽂아 두면 한 달 정도 후 새로운 싹이 수십 개씩 돋아난다. 토양은 펄라이트와 질석을 1:1로 혼합해 사용하고 밝은 창가에서 물이 마르지 않도록 잘 관리하며 습도를 유지해 주면 된다. 뿌리가 잘 내리면 하나씩 떼어 각각 10센티미터로 옮겨준다.
지치고 피곤할 때 나를 위로해 주는 스트렙토카르푸스는 파란색의 뉴질랜드 원종부터, 보라색 타르가(Targa), 분홍색 레니아(Renia), 그 외 다채로운 무늬가 들어가 있는 품종까지 꽃 색깔이 아주 다양하다. 공통적으로 아주 우아하고 섬세한 자태를 지니고 있어, 이 꽃이 놓인 공간을 매우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그에 따라 바닥에 떨어졌던 내 기분도 서서히 기운을 되찾고 품격 있는 일상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박원순
서울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후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국제정원사양성과정을 이수하고 델라웨어대학교 롱우드 대학원에서 대중 원예를 전공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에버랜드 꽃축제 연출 기획자를 거쳐 현재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에 <세상을 바꾼 식물 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지은 책에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 <가드너의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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