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진료실에서 특이한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체중이 감소했지만,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혈당이 호전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오히려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혈당이 악화되는 사례까지 자주 관찰되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에는 체중이 감소하면 검사결과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거의 다 상태가 호전됐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뭔가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체중 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잘 하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잘 하세요.”라고 격려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떻게 해서 체중을 감량했는지, 식단은 어떻게 바꿨는지를 꼭 확인하고 있다. 식단을 확인하면 건강 상태가 호전되지 않거나 혹은 악화된 경우 거의 예외없이 탄수화물을 줄이고, 닭가슴살이나 달걀, 고기 등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늘렸다. 체중은 10㎏ 감량했지만, 콜레스테롤이 100 이상 증가한 사례도 있었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로 체중을 감량해 매우 뿌듯한 표정인 사람에게 그 식단을 계속 유지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이나 지방 섭취가 늘면 체중을 감량할 수 있기는 하다.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사람은 공통적으로, 포만감이 오래 지속돼서 음식을 적게 먹어도 힘들지 않았던 것이 만족스러웠다고 말을 한다. 즉, 적게 먹어 체중이 감소하는 것이다. 실제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은 음식물이 위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도록 한다. 하지만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 공 복상태에 비해 3배 수준으로 인슐린 분비가 증가하고, 탄수화물 중심 식사를 할 때보다 동물성 단백질을 추가해서 식사를 할 때 혈중 인슐린 수준이 2배로 증가하기 때문에,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장기간 지속할 경우 우리 몸은 점점 낮은 인슐린에는 반응하지 않는 ‘인슐린저항성’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이 상승하게 되고, 엄격하게 칼로리를 제한하지 않는 한 복부와 근육, 간에 지방이 축적되기 쉬운 체질로 바뀌게 된다. 또 지속적으로 인슐린 농도가 높을 경우 암세포의 성장도 촉진돼 암 발생 위험도 증가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공신력 있는 어떤 의료단체에서도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권장하지 않는다. 1970년대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름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유행하면서 이 식사법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도 2000년 이후 많이 발표됐다. 결과는 매우 일관됐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인슐린저항성과 당뇨병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사망률도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단백질을 동물성 식품에서 섭취했냐, 식물성 식품에서 섭취했느냐에 따라 건강에 미친 영향은 정반대였다.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당뇨병 발생, 사망, 심혈관질환 사망 발생 위험이 가파르게 증가했고, 식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오히려 질병과 사망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로 체중을 감량에 성공했다는 사례를 접하면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하지만,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정반대인 ‘고탄수화물 자연식물식’ 다이어트로도 얼마든지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 쌀, 밀, 보리,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평소 흔히 먹는 녹말 음식을 본인에게 필요한 칼로리만큼 충분히 섭취하고,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 동물성 단백질 식품을 먹지 않으며, 식용유와 설탕이 과량 들어간 식물성 식품을 최대한 포함하지 않는 식단이다. 필자의 키는 180㎝인데, 자연식물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2달 만에 체중이 75㎏에서 66㎏ 수준으로 감소했다. 저절로 몸의 불필요한 지방이 빠져나간 것이다. 자연식물식으로 식단을 바꾸면 보통 1주일에 0.5~1㎏ 정도 체중이 빠져, 평균 10㎏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감량할 수 있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식물식을 실천하더라도 근육을 키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근육량은 운동량에 비례하지, 단백질 섭취량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성 식품에도 충분한 양의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어서 오히려 적정량의 단백질을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식이섬유와 각종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성분도 충분히 섭취하게 돼 운동 후 피로회복이 빨라져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은 운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왕에 애써서 식단을 바꿀 거라면 ‘저탄수화물’이 아니라 체중감량과 건강회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자연식물식’을 선택하길 의사로서 간절히 바란다.
이의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생활습관의학전문의 만성질환,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자연식물식을 알린다. 저서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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