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나무는 무엇일까?숲 해설사이자 만화가 황경택의 나무 인문학.
황경택21. 10. 01 · 읽음 6,124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과거에는 소나무가 제일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참나무가 가장 많습니다. 그중 신갈나무가 제일 많지요. 참나무 중 남쪽 지방에 사는 가시나무 종을 빼고 중부 내륙에 살고 있는 것만 살펴보면 총 여섯 종류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신갈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잎의 크기나 모양, 잎자루의 길이, 톱니의 모양 등이 조금씩 다릅니다.

참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는 따로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나무들을 뭉뚱그려 참나무라고 부릅니다. 나무의 목질이 단단하며 숯을 만들어 쓰기 좋고, 그 외에도 쓰임새가 다양해 우리 조상들이 오랜 세월 유용하게 사용해온 나무라서 ‘진짜 나무’라는 의미로 ‘참’이란 글자를 붙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나무를 종교적으로 숭상하고, 술통으로 만들거나 일상용품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참나무가 우리 인류에게 쓰임새 있는 나무로 여겨지는 것은 단순히 목질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나무에 달리는 열매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바로 도토리지요.

참나무가 유용한 나무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도토리가 큰 역할을 했다. © 황경택

도토리의 인문학

도토리는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성분이 많아 옛날 우리 선조들이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열매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반달가슴곰부터 멧돼지, 너구리, 다람쥐, 청설모, 들쥐, 어치, 딱따구리 등 많은 동물들이 도토리를 좋아합니다. 혹시 도토리라는 이름이 멧돼지와 연관이 깊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옛날에 돼지를 우리말로 ‘도’ ‘돝’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도떼기시장’이나 ‘도야지’라는 단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야지는 도의 새끼를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돼지’가 되었습니다. 새끼 돼지에서 일반 돼지로 의미가 확장된 것입니다. 도토리 역시 ‘도’가 먹는 밤이라고 해서 ‘돝의 밤’ ‘도투람’ ‘도톨암’ ‘도토리’ 같은 식으로 이름이 변하게 됐습니다. 요즘에 ‘이베리코 돼지고기’라고 해서 스페인 지역의 독특한 돼지고기가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요. 다름 아닌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돼지가 도토리를 먹는다는 것이 의아할지 몰라도, 앞서 언급한 대로 원래 돼지는 조상인 멧돼지 때부터 도토리를 좋아하는 동물이었던 것입니다.

청설모와 도토리의 이야기도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데요. 겨울잠을 자지 않는 청설모는 겨울 동안에도 먹이를 계속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먹이를 저장해두는데, 다람쥐가 한 군데에 많이 저장하는 것과 달리 조금씩 여러 군데에 저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묻었는지 깜빡해서 못 파먹는 경우가 있지요. 그곳에서 이듬해 싹이 나고 참나무가 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참나무는 그런 청설모의 특성을 알고서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먹히지 않고 살아남아 참나무로 자라나는 것은 몇 개나 될까요? 아무리 우리나라 숲에 참나무가 많다고 해도 해마다 그 수량이 몇 배씩 늘어나진 않는 것을 봐서는, 수많은 도토리 중에 나무가 되는 것은 극히 일부로 여겨집니다.

빨갛게 익은 팥배나무 열매. 곧 새에 의해 멀리까지 이동하게 된다.  © 황경택

산책하다 만나는 참나무를 보면 기특하고 고맙지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이런 의미에서 모두 기특하고 소중합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연과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내가 기억하는 어려움 말고도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 수많은 어려움이 나를 둘러싸고 존재해왔겠지요. 그것들을 모두 이겨내고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건강히 지내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큰 성공이 아니더라도 존재 그 자체로도 자기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는 가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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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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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부천만화대상 어린이만화상을 수상한 만화가이자 숲해설가. 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풀과 나무, 곤충을 그립니다. <꼬마애벌레말캉이> <우리 마음 속에는 저마다 숲이 있다> <숲 읽어주는 남자> <자연을 그리다> 등을 펴냈습니다. 황경택 생태놀이연구소 카페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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