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싱싱하게 보관하려고 넣어 놓은 식재료들이 바쁜 생활에 무심한 사이 냉장고 안에서 쓰레기가 되어갑니다. 과연 냉장고가 음식을 보관하는 최선의 방법일까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이 식재료들을 어떻게 보관했던 것일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음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냉장고에 보관하지만 사실 냉장고에 넣는 많은 식재료는 냉장고에 있지 않아도 되거나 냉장고에 있으면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냉장고는 식재료가 썩지 않고 보존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온갖 종류의 식재료와 음식이 한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 까닭에 각각의 식재료 특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평균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과일과 채소마다 가장 좋은 환경은 다 다릅니다.
일반적인 냉장고의 온도는 1도에서 4도입니다. 토마토나 애호박, 토란 등은 10도 이하에서, 가지와 오이, 강낭콩은 7도 이하에서 저온 장애를 겪기 시작합니다. 토마토는 색이 변하기도 하고 물러지며 맛을 잃습니다. 오이는 표면에 미끌거리는 액체가 생기기도 합니다. 감자의 경우 눈에는 띄지 않지만 4도 이하에서는 탄수화물 성분이 당분으로 바뀌며 쓴맛이 날 수 있습니다.
망고, 아보카도, 파인애플 등의 열대 과일에게 냉장고는 너무 추운 곳이죠. 다른 열대 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온에 강하지만 수박도 원산지는 아프리카입니다. 4도에서 4.5도 이하에서 맛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해요. 인도가 원산지인 가지에게도 냉장고는 너무 추운 환경이에요. 남미 지역이 원산지인 고구마도 13도 이하에서는 색과 맛이 변하며 심할 경우 가운데가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감기에 걸리는 거예요. 감기에 걸렸을 때 몸이 안 좋아지는 것처럼 채소도 마찬가지죠. 결국 우리는 겉은 멀쩡해도 속은 골골거리는 채소를 먹는 셈입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와 과일은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상온에서 그 맛과 영양이 잘 보존되는 식재료가 있고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가 없거나 냉장 보관 시 오히려 상하기 쉬운 식재료도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 구매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춰 보관하면 많은 식재료에 따라 며칠에서 2달에서 3달까지 상온에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온에서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관리하다 보면 버리는 일도 줄어듭니다. 부엌 선반에 두고 먹던 가지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면 그날 저녁은 가지를 먹는 식이죠.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 관심을 갖고 배워가는 만큼 버리는 일은 줄어들고 나와 지구가 모두 건강한 식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토마토
토마토는 적도에 가까운 남미 안데스의 고산 지대가 원산지입니다. 태생이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 냉장고처럼 추운 환경에서는 상태가 나빠집니다. 토마토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상온 보관해야 합니다. 토마토를 낱개로 사면 꼭지가 아래로 가도록 뒤집습니다. 꼭지를 통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꼭지 쪽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필 수도 있으니 채반 등을 이용하면 좋습니다. 송이로 파는 토마토는 그대로 매달아 보관하면 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열매채소
가지, 애호박, 오이, 파프리카 등 열매채소는 오래 보관하기 까다로운 식재료 중 하나입니다. 저온 장애를 입기 때문에 냉장고에 보관하기는 어렵고 습도가 높은 환경을 좋아합니다. 옆으로 넓게 퍼진 그릇에 물을 담고 그 위에 성긴 채반을 올린 뒤 채소를 담으면 그릇에서 물이 증발하면서 채소의 수분을 보호해줍니다. 물이 마르지 않도록 그때그때 채워줍니다.
양배추
양배추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 전체를 먹는 채소입니다. 수분 함유량이 많아서 수분만 제대로 공급해주면 한 두 달 이상 상온에서 보관하며 먹을 수 있습니다. 깊이가 있는 조금 있는 접시에 물을 담고 양배추를 올립니다. 물은 양배추 밑동만 살짝 잠기도록 담습니다.
깻잎
깻잎은 저온 장애를 쉽게 입는 잎채소라 냉장고에 보관하면 잎자루 끝이 갈변하거나 검은 반점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깻잎의 잎자루만 물에 잠기도록 유리 용기에 담아 상온에서 보관합니다. 무른 잎이 있으면 다른 잎까지 상할 수 있으니 바로 제거해줍니다. 1주일 정도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류지현
디자이너 류지현은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 캠페인으로 식재료 본연의 성질에 맞는 보관법과 식생활을 제안한다. 이는 유럽 연합에 의해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로 웨이스트 키친> <사람의 부엌>에서 프로젝트를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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