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인생론감은 부패하기 직전에 달콤한 홍시가 됩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합니다.
전성배21. 10. 19 · 읽음 1,963

홍시, 연시, 반시, 연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무른 감. 이 과일은 매년 햇사과와 햇배, 단감, 대추 등을 주로 찾는 추석이 지난 뒤에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추석 전부터 시장에 풀리기는 하지만, 차례상에 올라가는 과일이 주로 소비되는 추석이 끝나기 전까지는 뒷방 신세를 지기 때문이다. 추석이 끝나고 후식으로, 간식으로 먹을 과일을 찾아 사람들이 눈길을 돌리면 비로소 홍시가 그들의 눈에 띈다.

추석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홍시 판매를 시작할 무렵이면 비슷한 구매 요청 사항을 한 번씩 받는다. 시골에 보낼 물건이니 맛있고 잘 익은 것으로 보내 달라는 말이다. 그런 말에는 치아가 좋지 못한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가 유일하게 드실 수 있는 것이 홍시라면서, 철을 기다렸다는 말이 자주 덧붙여진다. 노인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과일이라…… 생각해보면 홍시뿐 아니라 딸기, 귤, 바나나 등 부드럽고 맛있는 과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치아가 좋지 못한 노인이 좋아하는 과일로 홍시를 말하는 건, 적어도 감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과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홍시는 그들과 똑 닮기도 했다.

떫은 토종 단감을 먹을 방법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홍시가 탄생했다. © 전성배 

우리가 가을에 주로 먹는 단감은 1910년에 일본을 통해 도입된 '부유'라는 품종이다. 우리나라 토종 감은 떫은 감이 대부분이었기에, 생식하기 어려운 이 떫은 감을 먹을 다양한 방법이 오래전부터 고안되었다. 그중 하나가 탈삽을 해 홍시로 만들어 먹는 법이다. 감의 떫은맛은 타닌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타닌을 수용성에서 불용성으로 바꾸는 탈삽 과정을 거치면 감 본연의 단맛만 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단단했던 과육이 부드러워지는데 이것이 우리가 아는 홍시다.

현대에 유통되는 홍시의 대부분은 가스 탈삽법의 일종인 연화제를 사용해 만든다. 땡감이라고도 부르는 딱딱한 상태의 떫은 감을 박스에 담아 밀봉하기 전에 이 연화제를 부착하고 밀봉하면, 유통 과정에서 탈삽이 이루어져 땡감이 홍시로 탈바꿈한다. 터지기 쉬운 홍시의 특성을 고려해 고안한 유통법인 셈이다. 온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밀봉 후 약 일주일이면 알맞게 익은 홍시를 맛볼 수 있다. 이를 알려주기 위해 홍시 박스에는 밀봉 일자가 별도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홍시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노인들이, 나의 할머니가 홍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을 똑 닮았다. 홍시는, 감이 새로운 과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물의 노화를 따라한 결과일 뿐이다. 단단했던 과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맛이 증가하며 말랑해지다가 이내 부패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과정에서 홍시는 부패하기 전 단계에 있다. 과일은 부패가 시작되기 전이 가장 달고 부드러운 법이다. 즉, 홍시란 이름은 떫은 감이 절정에 닿을 때 붙는 별명과도 같다. 거기서 하루 이틀만 지나면 투명하고 맑던 홍시의 주홍색은 죽고, 쫄깃했던 속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부패의 초읽기. 이는 인간의 나이 듦과 비슷하다.

가을에는 노인의 손에 들린 홍시를 자주 본다. 이제는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은 나의 할머니만 해도 가을이면 홍시만은 잊지 않고 손에 든다. 치아가 성할 때도, 성하지 않을 때도 그랬다. 억지라면 억지다. 순전히 홍시가 맛있어서 혹은 성하지 못한 치아로 먹을 수 있는 과일 중 가장 저렴한 게 홍시여서 좋아한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노인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홍시에 연민을 가져 홍시를 찾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늙어간다는 게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게 된다.

농산물MD 전성배 작가가 알려주는 과일 용어

반시

떫은 감 품종 중 하나로, 경북 청도와 경남 밀양에서 주로 생산된다.

납작한 모양으로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부유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으로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단감이다.

연화제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인체에 무해한 식물성 에틸렌 가스 발생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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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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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성배입니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연재자이며,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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