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는 스릴 넘치는 일입니다. 뿌리가 밝은 빛과 건조한 공기를 만나면 상할 테니, 재빨리 새 화분으로 옮겨 주리라 마음을 굳힌 뒤 화분을 뒤집습니다. 이런. 뿌리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군요. 함부로 자르고 뜯어냈다가는 한동안 시들할 테니 조심스레 풀어냅니다. 마음과 달리 뿌리는 자꾸만 뚝뚝 끊어지는데, 분리해줘야 할 작은 촉도 눈에 들어옵니다. 뿌리가 마를까 싶어 손을 재촉합니다. 얼추 마무리하고 새 화분에 옮기려는데, 준비해둔 화분에 풀어낸 뿌리가 다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득 영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 분갈이 장면이 생각납니다. 마법 약초학 실습 시간, 교수님은 맨드레이크라는 식물을 옮겨 심으며 학생들에게 귀마개를 꼭 하도록 당부합니다. 흙투성이 사람처럼 생긴 맨드레이크의 뿌리가 비명을 지르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기절하거나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지요. 잠시 후 학생들이 화분에서 꺼낸 맨드레이크는 꼬물거리며 괴성을 냅니다. 이 모습이 무서웠는지 한 학생은 귀마개를 하고도 기절합니다. 그런데 이 ‘맨드레이크’는 실존하는 식물입니다. 과연 어떤 식물일까요?
약초와 독초 사이
실제 맨드레이크는 지중해 인근에 분포하며, 가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인삼처럼 통통하게 살찌고 몇 갈래로 갈라진 뿌리가 특징입니다. 이 뿌리가 마치 사람이 형상처럼 보이는 건 영화 속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뿌리를 캐도 특별한 소리를 낸다거나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상부도 다소 평범합니다. 주름진 치마 같은 잎은 봄동처럼 바닥에 펼쳐지고, 잎이 모인 중심부에는 다섯 갈래로 벌어진 보라색 꽃이 여러 송이 핍니다. 꽃이 시든 자리에는 둥글고 노란 열매가 달리는데, 외관부터 단면까지 작은 토마토를 닮았습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맨드레이크로 해독제를 만들어,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리는 저주를 치료했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일종의 약초로 쓴 것이지요. 실제로 맨드레이크는 고대부터 수술을 위한 마취제나 우울증, 조증 등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쓰였습니다. 창세기에는 맨드레이크를 사랑의 묘약으로 사용하는 내용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잎과 뿌리에 트로판 알칼로이드같은 독을 갖고 있으며, 환각과 섬망을 일으키고 심하면 의식 불명이나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식물이기도 합니다.

실재하는 마법의 풀
사람들은 맨드레이크를 마법의 풀로 여겨왔습니다. 사형수의 정액에서만 싹트는 식물로 생각했고, 마녀가 만드는 특별한 마법 약의 핵심 재료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맨드레이크가 정말 소리를 지른다고 믿었던 것인지 맨드레이크 뿌리를 안전하게 뽑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맨드레이크 뿌리에 개를 묶은 뒤 먼 곳으로 가서 개를 부르면, 주인에게 달려오는 그 개에 맨드레이크가 딸려 올라오는 것이죠. 맨드레이크의 괴성을 피하지 못한 개는 주인 대신 죽었을 테지만요. 꽤나 구체적인 이런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맨크레이크가 정말 마법 약초인 것 같고 마법이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법사들의 세계를 그린 해리 포터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이제 더 늦어지기 전에 분갈이를 마무리할까요? 오래되고 상한 뿌리를 잘라내고 새 화분에 자리를 잡은 뒤, 흙을 덮고 물을 흠뻑 뿌립니다. 조용히 떨어져 있는 잔뿌리들을 보니 맨드레이크가 보여준 마법의 세계가 떠오르는 듯 합니다.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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