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죽이고 또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초록빛 생명력에 이끌려 고민 없이 쉽게 사온 식물들은 참 쉽게도 죽어나갔다.
그렇게 죽어나갈 것을 모르고 식물에 반해서 지갑을 여는 순간은 늘 마법 같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식물들이 있었다. 식물 가게 주인들은 언제나 내가 고른 식물이 “잘 자라는 식물”이라며 “일주일에 두 번 물 주면 알아서 산다” 했다. 시원스러운 가이드라인을 들으며 이번에는 정말이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감에 차서 식물을 데려오고 물을 콸콸 부어주는 동거를 시작해보면 아니나 다를까, 알아서 산다던 식물들이 몇 주에서 몇 달 만에 죽어버렸다.
‘일주일에 두 번 물을 줬는데 뭐가 문제야 정말…! 화원에서는 식물들이 짧은 기간 동안만 건강하게 자라는 약을 주는 게 분명해…’ 하며 나만의 음모론을 펼치곤 했다.

식물 키우기에 누구보다도 진심이 된 나는 물 주기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식물에게 물을 얼마나 줬는지, 언제 비료를 줬는지, 지난번에는 며칠 만에 물을 줬고 이번에는 며칠 만에 흙이 말랐는지 하나하나 세세히 관찰하고 살피기 시작했다.
죽이고 또 죽이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두 번’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부족한 정보와 관심 때문에 보통의 식물은 일주일에 두 번, 다육 식물은 2주에 한 번 물을 주는 것이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이 아닌, 화분이라는 작은 세계에 담긴 식물에게는 생각보다 세심한 물 주기와 돌봄이 필요하다. 어떤 재질의 화분에 담겨 있는지, 배수가 용이한 흙인지 아닌지, 식물이 한참 성장기인지 아니면 잠깐 쉬는 때인지를 다 따져서 그때그때 알맞은 물주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물 물 주기는 조금씩 더 재미있어지고, 비로소 조금씩 실수를 줄여갈 수 있게 되었다.

물 주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작은 라벤더는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며 몸집을 키우더니 일주일에 한 번 먹던 물을 사흘에 한 번도 모자랄 지경으로 꿀꺽꿀꺽 먹곤 했고 병충해에 시달린 스파티필름은 열흘에 한 번이던 물주는 주기를 보름으로 늘려도 여전히 흙이 축축하곤 했다. 건강한 식물과 조금 괴로운 식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실패 없는 물 주기에는 ‘관심’이라는 한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화분을 들여다보고 화분의 흙이 얼마나 말랐는지 만져보고 긴가민가할 때마다 나무젓가락을 꽂아 화분 안의 수분을 가늠해보면서 흙과 뿌리와 이파리의 상관관계를 이해할수록 내 집 식물들은 건강해졌다. 해와 물 그리고 나의 관심이 만들어낸 삼박자에 기쁘게 자라는 식물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귀여운 마음이 울렁인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그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대충 보고 내 위주로 식물을 돌보던 시절은 막을 내리고, 나는 식물과 함께하는 건강한 즐거움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이 즐거움을 위해 반드시 멀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일주일에 두 번 물 주세요!’
임이랑
록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 <아무튼, 식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를 출간했고 EBS FM '임이랑의 식물수다'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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