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커피나무를 사와 키우고 있다. 키가 1미터 20센티미터는 되는, 제법 나무다운 목대를 가진 멋진 커피나무다. 이 식물을 선뜻 구입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과거에 내가 운영하고 있던 식물 가게 옆에는 직접 로스팅을 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실내 안쪽에 커피나무 화분이 굉장히 많았다. 식물이 자라기엔 많이 열악해 보였고, 실제로 커피 열매를 맺은 걸 본 적은 없지만 나무들은 몇 년 동안 한결같이 잘 살아 있었다. 관찰 결과 식물 자체가 무던한 편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대로 커피나무는 우리 집에서도 기복 없이 잘 자라고 있다. 성장이 빨라 해마다 수북하게 자라는 잎과 가지를 치며 모양을 내는 재미가 있고, 잎을 자주 닦아주지 않아도 특유의 광택이 도는 예쁜 잎이 오래 가서 가꾸기가 편리하다. 심지어 사온 지 얼마 안 돼 꽃도 피웠다. 잎 겨드랑이에 뭔가 돋아나오기에 무엇일까 궁금해하던 차에 그중 몇 개가 꽃봉오리로 변했다. 꽃에서는 좋은 향이 났다.

꽃망울을 보고 흥분해서 커피나무에 관한 포스팅을 검색해보았더니, 실제로 몇몇 블로거가 집에서 커피 열매까지 재배해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신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포스팅은 그 과정을 여과없이 기록하고 있어 잔뜩 든 내 헛바람을 잠재우도록 도와주었다.
커피나무 옆에는 레몬나무들이 있다. 이미 나무가 된 것을 사온 커피나무와 달리, 아주 오랫동안 막막한 시간을 거친 녀석들이다. 이 레몬나무들은 4년 전 레모네이드였다. 정확히는 레모네이드를 만들 때 나온 레몬 씨앗들이었다. 자몽에이드에서 나온 자몽 씨앗을 포함해 스무 개가량을 심어 키웠다. 새싹까진 무난히 나왔지만 그 후로 3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겨울엔 꼬박 어두운 곳에 갇혀 지내고, 실내 배치를 바꾸고, 내부 공사도 하고, 폐업으로 이사를 하는 동안 환경변화와 관리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매년 반절씩은 죽어 사라졌다. 살아남은 것도 10센티미터 남짓한 새싹 상태에서 전혀 자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봄, 단 두 가닥 남은 새싹의 흙을 완전히 새로운 종류도 바꾸고 분도 토분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랬더니 분갈이 직후 단 5개월 만에 각각 30센티미터, 50센티미터 정도까지 자라고 올해 봄이 되자 약 45센티미터, 90센티미터까지 자라났다. 줄기가 딱딱하게 목질화되어 커피나무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나무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지금은 꽃시장에 가면 이보다 더 작은 줄기에 열매가 버거울 정도로 달린 레몬나무 모종이 나와 있다. 이미 나무가 된 커피나무처럼, 레몬을 맺은 레몬나무도 이미 그 자체로 자기소개가 끝난 것처럼 보여서 가끔은 좀 부럽다.
두 식물은 최근 1년 동안 쭉쭉 자라 집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을 낮춰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되었다. 언젠가 내 레몬나무에도 꽃이 피겠지. 사실 커피나무 꽃도 금방 시들고 열매가 되지는 못했다. 꽃에서 열매로, 열매에서 레모네이드로 가는 길은 최소한 지금 키워온 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과실수는 종류에 따라 다르나 꽃을 맺기까지 3년에서 7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언젠가 맺힐 열매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새로 나온 푸르른 잎들을 감상해본다.
식물성
여러 식물과 동거중. 책 <식물 저승사자>, <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 <나는 식물 키우며 산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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