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덜 익은 과일을 사과와 함께 두는 이유
조현진22. 02. 28 · 읽음 2,917

담배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남몰래 감상에 빠집니다. 한때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푸른 잎을 펼쳤을 식물 담배가, 작고 흰 분필처럼 가공되어 끝내는 연기로 사라지는 모습이 서늘해서요. 싱그러웠던 지난 여름날과 작별하고 초라하게 남겨진 담배꽁초가 겨울보다도 앙상해 보입니다. 그래서 흡연장 주변에 서 있는 식물들에게 이 쓸쓸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때론 조금 미안해집니다. 여기서 잠깐. 코도 없는 식물이 냄새를 맡는 것을 걱정하다니, 감정 이입이 과한 걸까요? 아니, 그 이전에 식물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걸까요?

식물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달콤한 딸기 향을 맡으면 군침이 도는 것처럼, 식물도 기체를 받아들여 특정한 반응을 보입니다. 따라서 식물도 냄새를 맡는다고 표현할 수 있지요. 그중 특히 냄새를 잘 맡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은 미국실새삼입니다.

미국실새삼은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다른 식물의 줄기에 붙어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기생식물입니다. 다른 식물들을 칭칭 감아 자라는데, 광합성을 스스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잎도 없고 줄기는 노란색입니다. 공터나 들판에서 자라는 미국실새삼은 누군가 버린 노란 끈이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갓 싹튼 미국실새삼은 이 노란 끈 같은 줄기를 이리저리 뻗어가며 양분을 빼앗을 다른 식물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 근처에 있는 여러 식물이 있다면, 그중 특별히 좋아하는 토마토를 정확하게 골라내어 달라붙습니다. 다른 식물들 사이에서 토마토가 방출하는 기체 성분을 감지해, 즉 냄새를 맡아 토마토를 찾아내는 것이지요.

© 조현진

냄새를 맡는 과일들

늦여름의 과일 가게, 달콤해 보이는 과일을 골라도 막상 맛을 보면 싱거울 때가 있지요. 예로부터 이렇게 덜 익은 과일을 숙성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설익은 무화과 더미에 반으로 자른 무화과를 몇 개 두었고, 고대 중국에서는 과일 저장고에 향을 피웠으며, 20세기 미국에서는 레몬 창고에 석유 난로를 때웠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하면 과일들은 금방 익었는데, 이는 과일이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틸렌은 익어가는 열매에서 많이 방출되는 기체인데, 식물 노화 호르몬으로 작용합니다. 즉, 과일은 기체 상태의 에틸렌을 맡고 빠르게 숙성되는 것이지요. 고대 이집트인이 반으로 가른 무화과에서는 자르지 않은 것보다 쉽게 에틸렌 가스가 빠져나와 후숙을 도왔을 겁니다. 고대 중국에서 태웠던 향 연기와 20세기 미국의 석유 난로 연기에는 에틸렌 가스가 포함되어 있었고요.

무르기 쉬운 과일은 사과와 따로 보관하라고, 반대로 덜 익은 과일의 후숙을 도우려면 사과와 함께 두라고, 살림의 고수들이 생활 노하우를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에틸렌 가스를 많이 뿜어내는 사과의 특징과 과일의 ‘후각’을 지혜롭게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식물의 감각은 어떨까?

한 인터뷰에서 식물로 태어난다면 어떤 종을 선택하고 싶은지 물어오신 적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왜냐하면 식물로 다시 태어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식물은 생각하는 두뇌나 오감을 느끼는 신경이 없으니, 우리가 갖는 인식이나 감각도 부재할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이번 글에서, 식물이 냄새를 맡는다는 표현이 여럿 등장하지만, 식물에게 코가 없는 만큼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기체 물질을 감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가 꽃향기를 맡고 미소를 짓듯, 식물도 기체를 받아들이고 반응을 보입니다. 다만, 이 ‘후각’은 우리가 모르는 식물 고유의 방식이겠지요. 언젠가 식물로 태어난다면, 이 방식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22
조현진
팔로워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댓글 22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