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와 ‘아싸’ 사이에서, 포모 증후군무리에 속하지 못해서 느끼는 불안이 지나치게 과도한 경우
김민경22. 04. 29 · 읽음 17,225

1년여의 긴 팬데믹 혼란이 이어지던 중 2021년 봄, 게임 체인저라는 기대를 안고 코로나 예방백신이 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곧 일상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백신의 효과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 분위기 탓에 첫 접종대상자가 의료인과 요양병원 환자들로 정해졌을 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충돌했습니다. 백신을 일찍 맞아 감염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다른 사람은 아직 맞지 않는 주사를 나만 맞게 되었다는 불안감입니다. 

“선생님, 이 주사를 맞는 게 좋나요?” 

“의사, 간호사 선생님도 똑같은 주사 맞는 건가요?”

당시 병동의 간호사가 한 보호자로부터 ‘의료진은 A백신을 맞고 환자들만 B백신을 맞는 것 아닌가요?’ 라는 항의를 받은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제가 일하던 병원의 모든 의료진과 환자는 동일한 B백신을 접종받았습니다). 충분한 누적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B백신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는 ‘00백신이 좋다더라’라는 가짜뉴스가 유행하기 쉽습니다. 저와 같이 근무한 의료인 모두 책임감 때문에 일사분란하게 백신 접종을 했지만, 종종 의료인 중에서도 ‘난 맞지 않고 싶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2021년 가을, 전국민의 70프로가 1차 접종을 마쳤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상담 환자 중에서도 ‘백신 접종 후 몸살’로 상담 스케줄을 조정하겠다는 분들이 늘고, 상담 내용도 ‘백신을 맞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하다’는 호소보다 ‘백신을 맞을 건데 몸이 피곤할까 걱정이다’는 염려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가장 안심시키는 것이 ‘무리 안에 속했다’라는 명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매일매일 이러한 명제를 확인하게 되는데요.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텅텅 비어 있는 식당보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음식점의 요리가 왠지 맛있을 것 같고, 필요 없다고 생각한 물건을 모두 갖고 있거나, 한 바이오 기업에서 신약을 개발했는데 누구누구가 샀다며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나도 모르게 솔깃해지죠.

‘집값은 지금 버블이야, 곧 내려갈 텐데 뭐! 전세로 조금 더 기회를 보자’ 라고 생각했다가도 주변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로 대출받아 내 집 장만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를 테면, 인싸(insider)와 아싸(outsider)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데 빨리 인싸 쪽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 아웃사이드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자꾸 생기는 거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마치 인간의 유전자에 이미 새겨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물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듯 포식자에게 잡히는 동물은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고립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일찍 사망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지 못했을 테지요. 우리는 무리 생활에 잘 적응해 살아남은 이들의 자손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에 끼지 못해서 느끼는 불안이 지나치게 과도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아 ‘포모(fera of missing out) 증후군’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세상의 흐름에서 자신만 소외됐거나 고립됐다고 느끼는 공포감을 말합니다. 이러한 소외감과 공포감은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집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옛 속담이 지금은 기정사실인 것이죠. 우리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나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 Sasha Freemind on Unsplash

불과 30년 전만 해도 내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고립감을 느끼려면 시간차가 필요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고 사람들에게 확인하고 싶어도 그 즉시 가능한 일은 아니었죠. 그러는 사이 마음도 가라앉고,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소통을 핸드폰으로 합니다. 단체 메시지에서 왕따를 당하고 소외를 경험하고 나면 어디서 해결해야 할지 몰라 누구라도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연예인처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외감이 불러오는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외, 고립, 폭력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 맞아서 상처가 난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폭력이야, 이제 적당히 좀 화해하지!”

제가 알고 있는 A는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갔다가 B가 자신의 험담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화가 난 A는 해외에서 바로 B에게 핸드폰으로 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흥분해서 주고받은 메시지는 결국 각자에게 상처로 남아 매우 친했던 둘은 그만 회복되지 못할 만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이 없었다면 A는 먼 해외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더라도 바로 B에게 물어보지 못했을 것이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오해가 풀렸을 지도 모릅니다. 작금의 느긋함을 즐기지 못하고 천천히 가는 속도를 계속 무시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도 포모 증후군의 경계선 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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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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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 작은 식물을 가꾸는 일에 즐거움을 느껴,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식물을 놓아두고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 <현대인의 심리유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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