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 삶의 맛, 대저 토마토대저 토마토를 키워온 농부 가족 그리고 대저 토마토의 내일
전성배22. 03. 10 · 읽음 280

나의 키와 몸무게, 수없이 기르고 자르기를 반복했던 머리칼과 손톱, 오랜 세월 천천히 검게 타들어간 피부를 보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한다. 나를 나로 유지하는 것들을 창조한 작은 신들은 과연 무엇으로 나를 길렀나.

아버지는 당신이 젊을 적부터 조부와 함께 했던 유리 일과 목공 일로 나를 길렀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 일로 먹고살며 노년을 준비하고 계시니, 그간의 행적을 어렴풋이 그려낼 수 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식당 일을 하며 남들을 먹여야만 자식들을 먹일 수 있는 삶을 살았다. 그녀가 가족의 밥만 챙겨도 상관없게 된 건 누나와 내가 성인이 된 후였다. 우리가 돈벌이를 시작하고 나서야 그녀는 이름 모를 이들의 밥을 챙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고 과일을 파는 일로, 누나는 어느 회사의 돈을 관리하는 일로 작은 신들이 길러낸 몸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봄에 만났던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한 농부의 삶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나와 같은 구성의 가족에 속해 있지만, 우리 가족이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과 달리 그는 조부와 아버지를 따라서 대저 토마토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의 어린 자식도 그가 기른 토마토로 기르고 있다. 그는 말한다.

그야말로 3대에 걸쳐 대저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부만이 말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적은 숫자지만, 그것이 뜻하는 세월이 아득히 길어서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현재 대저동이 겪는 어려움이 살에 더 가까이 와닿았다.

대저토마토는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서만 생산되는 품종이다. © 전성배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는 오직 거기에서만 나는 특산품이 있다. 바로 대저 토마토다. 어디에서든, 심지어 가정집에서도 쉽게 기를 수 있는 토마토가 특산품이라는 말이 의아하겠지만, 강서구 대저동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여타 토마토와는 다른 독보적인 맛을 낸다. 바로 짭짤함이다. 그래서 대저 토마토는 ‘대저 짭짤이 토마토’ 혹은 ‘짭짤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직 대저동에서 나는 토마토만이 그 맛을 낼 수 있다. 즉, 대저 토마토는 특정 품종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찰토마토의 한 종류에 불과하며, 그것이 대저동의 땅에서 자라며 짭짤한 맛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유는 대저동의 지리적 특성에 있다. 대저동의 토양은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형성된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염분은 물론이고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다. 이를 영양분으로 삼고, 겨울의 찬바람을 견뎌낸 토마토는 조직이 치밀해지고 육질이 단단해지면서 짭짤한 맛을 갖게 된다.

이만 하면 누가 보아도 대저동은 대저 토마토의 명지로서 정부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대저 토마토의 명맥은,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부산 강서구에서 진행되는 신도시 개발 부지에 대저 토마토 재배지가 일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2013년에도 250헥타르에 달하는 대저 토마토 재배지 중 절반가량이 산업 단지와 주거 공간 조성 명목으로 개발 대상 구역으로 분류되면서 수십 개 농가가 흩어졌음에도,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려 하는 것이다.

대저 토마토는 대저동의 특산물이다. 그곳에서 재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설령 대저동 근방에서 재배해 그 맛을 조금이나마 흉내 낸다고 해도 온전한 짭짤이를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혹 만들어낼 수 있다 해도 이미 ‘대저 토마토’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어 새로운 이름의 토마토가 사랑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해당 지자체에서는 현재 대저 토마토 농가의 불안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상태이며 걱정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니 당분간은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부디 우리 가족이 해내지 못한, 누대에 걸쳐 대저 토마토로 살아가는 농부의 시간이 다음, 그다음으로 무사히 이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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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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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성배입니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연재자이며,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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