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가꾸는 일상의 힘식물을 돌보는 동안 마음이 정화되고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나요?
김민경21. 08. 06 · 읽음 3,057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진료 현장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말로 하는 상담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내담자의 미묘한 얼굴 근육, 입 꼬리가 향하는 방향 등으로 표정을 읽고, 내담자가 상담자와 가까운 의자에 앉는지 멀찍이 떨어져 앉는지에 따라 다양한 비언어적 메시지를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감염의 우려로 수시로 마스크를 잘 써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자 모든 사람들이 잔뜩 얼어붙고 예민해졌습니다. 복잡하게 말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으로 “잘 이해하고 있어요, 계속 말해보세요” 라고 전달하는 것이 마스크 때문에 어려워지자 저는 애써 목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치료자들도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는데요, 모든 회의는 서면이나 화상으로 바뀌었고 서로 간에 거리를 두어야했으니까요. 

저 역시도 삶의 무게를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어서 한숨만 쉬고 있을 때 상담실 한쪽에 있던 연한 초록빛의 얼룩무늬가 있는 벤자민 고무나무가 제 마음마냥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왠만하면 잘 큰다는 선인장도 말려 죽여본 전력이 있던 저는 최근에는 식물에 대해 공부하고 정성을 쏟고 있던 터였습니다. 시들한 잎을 본 순간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키우라’는 화원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죠. 곧장 큰 문을 통해 늘 바람이 잘 통하고 환한 해가 비치는 병원 로비의 카페 한쪽 창가로 화분을 옮겼습니다. 

애초에 병원 로비나 창가에는 화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직원들과 이 부분을 의논하였지만 ‘과거에 화분을 들여봤는데, 곧 말라 죽었다, 업무도 바쁜데 정기적으로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식물은 로비에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저는 화분을 들이면서 ‘절대 죽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더랬죠. 카페에 들러 매일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면서 잎사귀를 만지고 흙을 가만히 쓸어보고는 물주는 시기를 점검했는데요, 놀랍게도 누군가 늘 화분이 촉촉하게 물을 주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최근 화분이 너무 예쁘다며 관심을 가지고, 나무 이름을 묻기도 하고, 마음이 절로 힐링이 된다고 표현하던 직원이 여럿 있었습니다. 물을 준 이가 그들 중 한 명일까요? 아직 알지 못합니다. 

Photo by Daria Rudyk on Unsplash

누구의 손길이 닿는지 모르는 동안에도 벤자민 고무나무는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내뿜으며 관심과 사랑을 받고 무성하게 자라는 중입니다. 왜 무언가에 정성을 쏟고 가꿀 때 오히려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까요? 내 힘으로 무언가를 돌보고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그 삶의 큰 원동력이 되는 셈이죠. 또한 식물은 우리의 정성을 잘 배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큰 문제가 없는 한 사랑을 준만큼 잘 성장해서 보답을 하거든요. 

상담실에서 자라는 화분들은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잘 돌보아준 만큼 새순을 내어줍니다. 식물이 새순을 내고 자라는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도 정화됨을 느끼게 되죠.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저는 여러 개의 화분을 추가로 들여 가꾸고 정기적으로 꽃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물올림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줄기를 자르고 시원한 물을 채운 화병에 꽃을 꽂는 순간, 매일 잎사귀를 매만지는 과정 하나하나는 마치 명상과도 비슷합니다. 속도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 순간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푸른 자연과 식물이 인간을 위협했던 적은 역사상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뭄이나 홍수로 식물이 메마른 땅은 인류에게 위협이었죠. 그래서 본능적으로 우리는 가로수가 울창한 길을 걸을 때는 마음이 편해지고, 나무 한 그루 없이 콘크리트 건물만 가득한 도심을 걸을 때면 왠지 모르게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내담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몸과 마음이 잔뜩 긴장된 채로 상담실에 들어와 앉아 저를 바라보면,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몇 개의 화분과 화사한 생화가 놓여 있습니다. 지금은 저와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이 공간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었습니다. 오늘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입원한 환자분과 동그랗고 작은 상추 화분 앞에서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갑니다. “선생님 최근에 조바심이 나고 힘들었는데 상추 한 포기를 키우는 것이 정말 즐겁고 신이나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을 때, 내 곁의 작은 식물이 나에게 파워 에너지를 주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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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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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 작은 식물을 가꾸는 일에 즐거움을 느껴,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식물을 놓아두고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 <현대인의 심리유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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