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꽃은 곤충과 새 그리고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 다양한 색깔과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대부분의 꽃들은 인간의 눈에도 아주 매혹적으로 보인다. 식물은 보통 자신의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과 새들이 활동하는 시기에 맞추어 꽃을 피운다. 온대 지방의 식물은 주로 따뜻한 계절에 꽃이 피고, 연중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열대 지방의 식물은 시시때때로 꽃이 핀다.
꽃을 보면 기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꽃을 보면 본능적으로 따뜻하고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이 생겨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희망 속에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사랑이 싹트게 되니,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고귀한 마음의 표현이다. 나에게 매일매일 꽃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신 우리에겐 시시때때로 꽃을 피워 주는 반려식물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씩 그 꽃들에 눈길이 멈추면 매 순간 짧지만 진한 감동을 경험한다.
그중 아프리칸 바이올렛은 단연코 ‘강추하는’ 꽃이다. 남아프리카 탄자니아 우삼바라산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독일계 탄자니아 식민지 관리자 세인트 폴 일레르가 처음 발견하여 유럽에 소개했다. 193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할머니의 꽃이라 할 만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는 꽃이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아프리칸 바이올렛은 나의 고모 수녀님이 계시는 포항의 작은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수녀님을 기다리던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인 꽃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 창문을 통해 햇살이 스며들고 저 멀리 사잇길로 수녀님이 걸어오시는 모습 그리고 나와 함께 그 공간에서 수녀님을 기다리던 보랏빛 꽃송이들의 따스한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아프리칸 바이올렛을 기를 때는 몇 가지만 염두에 두면 계속해서 꽃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직사광선이 아닌 밝은 빛의 규칙적인 주기다. 한 장소에서 빛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며 지내게 해주면 마치 남아프리카 고향 땅 숲 가장자리 어딘가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 잎도 꽃도 잘 자란다. 두 번째는 잎에 물이 닿지 않게 흙 바로 위로 조심스럽게 물을 주는 것이다. 이때 물은 반드시 하루 이상 받아놓은 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화분이 아주 가볍다고 느껴질 정도로 물이 말랐을 때 충분히 준다. 당연히 물을 주고 난 뒤에는 화분 받침에 절대로 물이 고여 있으면 안 된다.

꽃이 잘 피는 반려식물 가운데 남아메리카에서 온 베고니아 종류가 있다. 특히 사철베고니아 종류는 주로 꽃을 위해 육종되어 실내에서 연중 조건만 맞으면 지속적으로 꽃을 보기에 좋은 식물이다. 그중 베고니아 더블릿 핑크 품종은 높이와 폭이 30~40센티미터 정도로 단정하게 자라며 핑크빛 꽃이 주렁주렁 달려,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팝콘처럼 생긴 꽃은 마치 연인과 함께 영화관에 갈 때 들고 가야 할 것 같은 설렘을 준다. 자세히 보면 예쁜 장미꽃을 닮았다. 꽃들의 배경으로 자라는 청동색 잎들은 꽃을 더 귀하게 빛내 준다.
아프리칸 바이올렛처럼 베고니아도 흙이 계속 젖어 있는 상태를 싫어한다. 대신 공중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분무기로 잎에 물을 뿌리면 곰팡이가 생겨 잎이 녹아버린다. 넓은 화분 받침에 자갈을 놓고 물을 자박자박하게 부은 뒤 그 위에 화분을 올려 놓으면, 화분 밑은 물에 닿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 공중 습도가 높아져 베고니아가 행복해한다. 이렇게 내가 지내는 공간에 늘 꽃들이 피어나도록 반려식물을 기르면 나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항상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박원순
서울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후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국제정원사양성과정을 이수하고 델라웨어대학교 롱우드 대학원에서 대중 원예를 전공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에버랜드 꽃축제 연출 기획자를 거쳐 현재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에 <세상을 바꾼 식물 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지은 책에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 <가드너의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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