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책을 보다가 관심이 가는 음악 페스티벌을 알게 되었다. 매해 미국의 버몬트에서 열리는 말버러 뮤직 페스티벌이다. 정확히는 버몬트 남쪽에 있는 예술대학인 말버러대학 캠퍼스에서 열린다. 음악가들은 몇 달 동안 그곳에 머물며 음악 활동을 한다고 한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음악가들이 먹는다는 아침 메뉴에도 관심이 생겼다. 캠퍼스의 카페에서 간단한 뷔페식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는데, 과일과 샌드위치가 주요 메뉴라고. 그중에 페스티벌의 공동 예술 감독인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가 자주 시키는 샌드위치가 있다고 한다. 달걀 프라이, 토마토, 버몬트 체다 치즈, 베이컨이 들어간 샌드위치로, 이름은 에그 맥말버러 샌드위치다. 우치다 미츠코가 나무 쟁반에 샌드위치를 놓고 자리로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그 점심이 생각났다.
숲속에서의 점심이 말이다. 말버러 대학 자체가 숲이라는 말을 들었고, 당연히 음악가들이 아침을 먹는 카페도 숲의 일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캠퍼스가 산에 속해 있는지 산의 능선에 둘러싸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원지대라고 한다. 그러니 말버러 뮤직 페스티벌은 나무로 울창하다 못해, 숲이다 못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펼치지는 것이다. 그 지형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숲의 기운이 나를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래 전 숲속에서 먹은 점심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제공한 점심이었다. 독일의 작은 도시 노이스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뒤셀도르프에 먼저 갔다 한두 시간 걸려 노이스에 간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미술관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몇 가지 인상이 남아 있을 뿐인데, 광활한 숲 안에 있는 미술관이었다는 것, 진시황 무덤에 있을 법한 병마총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점심 식사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점심을 먹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미술관의 입장료에 식사가 포함되어 있었고,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은 자연히 밥을 먹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좀 놀랐다. 식당은 실내에도 마련돼 있었지만 밖에서, 그러니까 숲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음식에 놀랐다. 커다란 나무 바구니에 사과가 들어 있었고, 사과 옆에는 꿀 같은 게 있었다. ‘꿀 같은 게’라고 하는 것은 나는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음식이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다시 들여다봐도 여전히 모르겠다. 검은 젤리 같은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말이다. 나는 거기에 벌이 붙어 있어서 또 놀랐다. 사진에도 벌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벌이 정말 다글다글 달라붙어 있었다. 2007년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벌에 대한 것은 그렇지 않다.
실내라고는 해도 숲과 연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그새 벌이 날아와 붙었던 것 같다. 독일 사람들은 웃으면서 꿀 같은 것을 덜었다. 벌 때문에 웃는 것 같기도 했고, 그 재료가 자연에 속해 있다는 게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했다. 벌이 탐낼 만큼 신선하고, 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벌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 그들을 흡족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에 반해, 거기에 있던 나를 포함한 동양인 몇 명은 그걸 먹지 않았다. 처음 보는 식재료에 용감하게 접근하는 편인 나만 해도 그게 뭔지 몰랐기에 내키지가 않았고, 벌을 먹게 되거나 벌에게 물릴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먹었나? 생과일의 즙과 우유, 삶은 달걀과 사과를 먹었을 것이다. 조리된 음식은 삶은 달걀과 곡물빵 정도였다. 사과는 아름다워서 접시에 올려두고 한참을 보았다. 세잔의 정물화에 그려진 사과처럼 반쪽은 연두색이고 다른 반쪽은 선홍색인 사과였다. 마침내 한입을 베어 물었는데,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나는 사과에서 이런 맛이 날 수도 있다는 데 놀라서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에 질린 미다스 왕이 먹고 감격한 사과가 바로 이 사과와 같은 품종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숲속에 앉아 날것에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으며 나는 이 미술관에서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간은 숲에서 난 것들을 먹는다’는 단순한 진실을 느끼게 해주려고 그랬던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사과의 맛이 각별했던 것도 숲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 숲에서 자랐고, 그 숲에서 갓 따온 사과일 것이라는 연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숲에서 사과를 먹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숲에 앉아 숲을 먹던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
한은형
소설가.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와 장편소설 <거짓말>, 산문집 <그리너리 푸드: 오늘도 초록>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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