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음료의 유래를 따질 때 등장하는 인물 중에 에티오피아의 칼디(Kaldi)라는 목동이 있다. 그는 어느날 염소들이 빨간색 열매를 따 먹고는 춤을 추듯 뛰어다니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수도승 스키아들리에게 전한다. 이후 이 열매의 효능을 알게 된 수도승들이 제의 때 이 열매로 만든 음료를 즐겨 마시면서 커피가 널리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과 연결된다. 8세기 말, 메소포타미아 지방 바빌론 근처 ‘쿠파’라는 마을에 양털(아랍어로 수프(ṣūf)) 망토를 몸에 두르고 이슬람의 종교적 고행을 수행하는 이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을 일컬어 ‘수피(sufi)’라 불렀다. 그중 12세기 말에 태어난 알 샤드힐리는 철학자이자 의사로,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메가 등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종교 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13세기에 집중된 그의 활동 가운데 가장 특이한 점은 수행 방법 중 하나로 커피 잎과 줄기를 달여서 만든 ‘아비시니아 차’를 마셨다는 사실이다(그의 이름을 이탈리아 말로 번역하면 ‘스키아들리’가 되므로, 전설 속 두 인물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1258년 알 샤드힐리가 죽고 난 뒤 제자들이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알 샤드힐리 교단을 세우면서 이 음료 또한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수피는 잠을 참는 고행을 하고 식사 시간조차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는 금욕주의자였기에 수면욕과 식욕을 없애는 아비시니아 차야말로 그들에게 안성맞춤 음료였다. 커피 수요가 증가하자, 예멘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터키를 거쳐 북아프리카와 중동까지 전파됐다.
16세기 초 무렵이 되자, 메카와 메디나 등의 이슬람 성지와 이집트 카이로의 모스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1554년에는 하쿰(Hakm)과 샴스(Shams)라는 시리아인이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속한 도시 이스탄불(Istanbul)에 최초로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터키어로 ‘커피하우스’를 뜻하는 카흐베하네(Kahvehane)는 슐레이만 2세가 통치 기간(1566~1574년) 동안 600여 곳으로 늘어났다. 본래 ‘하네(hane)’는 비이슬람인을 위한 선술집 겸 여관으로, 음주가 금지된 이슬람교도는 출입하지 않는 장소였다. 하지만 커피를 판매하는 카흐베하네에는 종교와 신분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근황을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여가를 즐기는 사교의 장이 되었고, 정계 고위직은 물론 종교계의 권위자, 학자와 시인까지 드나 들었다.

이슬람의 성지나 모스크로 가는 순례길에도 수많은 카흐베하네가 들어섰다. 커피는 이 길을 걷는 순례자와 함께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터키의 카흐베하네는 유럽의 카페나 커피 하우스의 문화까지 영향을 끼친다. ‘커피(Coffee)’라는 단어에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커피를 ‘카와(Qahwa)’라 불렀는데, 이는 ‘욕구를 줄이다’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것이 터키에서 ‘카흐베(Kahve)’로, 유럽으로 건너가 ‘카페(Caffe)’가 되고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커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 커피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각국의 문화와 취향을 반영해 새로운 카페와 커피 음료가 등장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이슬람 문화의 색채가 남아 있는 셈이다.
piux
브랜드와 커피에 진심인 카페지기,「커피오리진」저자
댓글 21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