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이 바보’, ‘덕적도 관광 왔다. 사랑해, 군입대 D-18’, ‘사랑해서 미안해’. 덕적도 진리, 덕적면 소재지가 있는 진리 해변 모래밭에서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낙서를 본다. 군대는 아직도 이별로 가는 특급 열차인가? 남자의 군입대를 앞두고 섬에 온 연인은 서로의 앞날이 불안하다. 사랑해서 미안하겠는가. 사랑을 지킬 수 없어서 미안한 것이지. 어차피 모래 위에 새긴 사랑의 맹세란 한 번의 파도에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부질없는 맹세다. 그렇다고 바위에 암각한 사랑의 맹세라 해서 영원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의 맹세를 써야 할 곳은 어쩌면 이런 모래밭인지도 모른다. 덕적도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의 본섬이다. 면적 20.87제곱킬로미터, 해안선 길이 18킬로미터의 땅에 2,000여 명이 살아간다. 근처의 작은 섬 소야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한때 덕적도 서포리해변은 수도권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던 여름 피서지였다. 나이트클럽까지 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쇠락했다. 대신 오늘날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섬으로 손꼽힌다. 서포리 해변뿐만 아니라 밧지름 해변과 능동 자갈마당 해변 등도 여행자가 많이 찾는다.

과거 덕물도, 득물도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린 덕적도는 고대 황해 횡단 항로의 길목이기도 했다. 당나라의 백제 침략 때 덕적군도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의 전진기지였다. 660년, 수륙 1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백제 침략에 나선 소정방의 당나라군은 4개월간 덕적군도를 13만 군대의 주둔지 겸 군수품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이때 신라의 세자 법민(태종무열왕)이 작전회의를 하기 위해 덕적도를 방문했다고 전한다. 덕적도 바로 옆 소야도에는 당나라군의 진지로 추정되는 유적이 남아 있다. 당나라 침략자들은 덕적도에 주둔했다가 기벌포로 상륙해 신라와 협공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 덕적도는 수려한 경관으로도 이름 높았다. 조선의 지시서 <택리지>에 그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지금은 덕적면 전체 인구가 2,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1954년 덕적도의 인구는 1만 2,788명이나 됐다. 한국전쟁 직후라 피난민의 유입으로 인구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과거 덕적도는 연평도와 함께 서해안의 대표적 어업전진기지였다. 그 중심에 북리가 있었다. 북리에는 민어 파시가 섰다. 덕적도 앞 바다가 민어의 산란장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민어철이면 덕적도 북리항에는 수백 척의 어선들이 몰려들고 색주가만 수십 곳이 생겼다. 민어는 <동국여지승람>에 덕적도의 특산물로 거론될 정도로 덕적도 바다의 대표적 어종이었다.
그래서 북리마을에는 국내 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가옥이 여러 채 남아 있다. 북리 선주의 집을 상징하던 2층 누각이다. 2층 선주 집은 덕적도 북리에만 있던 부의 상징이다. 2층은 전체가 하나의 넓은 방인데, 바닥에 널마루를 깔아 방이라기보다 누각에 가깝다. 사방에 유리창을 달았고 각 방향마다 두 개씩의 창을 내 어느 방향이나 전망이 툭 트였다. 선주는 2층 마루에 앉아 북리 항으로 들어오는 자신의 배를 기다렸다. 만선기가 오르고 북소리가 울리면 선주는 선원들을 위한 잔치 준비를 서둘렀다. 참으로 유서 깊은 어업 유산이다.

비조봉에서 보는 서해안 풍경과 함께 덕적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서포리 해변이다. 신기루 같기도 하고 꿈결 같기도 한 해변 풍경. 이 해변을 감싸고 있는 솔숲은 금강송처럼 멋들어진 자태의 홍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해안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귀한 숲이다. 모래와 바람을 막아줄 방풍과 방사림으로 조성된 이 숲이 마을의 수호자가 되어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을 지켜준 것이다. 그래서 섬이나 바람 거센 바닷가 마을에는 아직도 숲에 대한 외경이 남아 있다. 여름, 이 숲의 해변가에 한 철 세 들어 살다 오면 당신의 삶도 더욱 평화로워질 것이다.
가는 방법 :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페리를 타고 1시간 50분을 달리면 덕적도에 도착한다.
강제윤
강제윤은 시인이며 섬연구자다. 사단법인섬연구소 소장,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국립 한국섬진흥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섬을 걷다>, <당신에게 섬>, <섬 택리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댓글 28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