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부터 찾아봤더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나무만 1,700그루. 평균 수령이 83년입니다. 이 정도면 다른 지역에서는 노거수로 분류하는데, 여기는 그런 노거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나무는 수령이 300년에 이릅니다. 이렇게 오래된 나무는 크기도 클 뿐 아니라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양도 상당합니다. 월정사로 들어서는 길목 바로 근처에 주차장이 있어도 구태여 저 아래에서부터 이 길을 걸어 올라가라는 건 그런 이유에서지요. 전국 각지에 우리가 몰랐던 훌륭한 숲이 많지만, ‘산림욕’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여건을 갖춘 곳은 흔하지 않습니다. 날이 궂든 좋든 찾아온 모든 날이 좋을 수밖에 없는 숲입니다.
숲을 다니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숲을 걸으면서 그 숲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길가에 무엇이 있는지, 각각의 나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숲 안쪽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살피며 걷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체로 동행인과 이야기를 하며 지나치거나 보기 좋은 그림을 배경으로 가족의 사진을 남겨주는 정도에 불과하죠. ‘가 봤다’라는 사실만 남고, 그 숲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전나무숲 초입에 선 일주문을 넘어가는 순간,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죠. 울창한 전나무가 빽빽합니다. 인위적인 관리의 손길보다는 자연이 수백 년 동안 가꿔온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사이사이에 안내판과 주변을 정리해 쌓아둔 나무, 예술가들이 길가에 조성해 둔 작품만이 사람의 흔적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전나무 하나하나의 굵기부터 남다릅니다. 손을 뻗어 끌어안아도 품 안에 다 안기 어려울 만큼 두꺼운 몸체입니다. 높다랗게 자란 나무는 하늘을 가려 청량한 산책길을 만들었고, 그 아래로 수없이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삽니다.

이 숲에는 아름드리 나무도 많지만, 쓰러져 생을 다한 나무의 모습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 그루터기를 다람쥐가 놀이터 삼아 뛰어다닙니다. 고사해 바스러진 나무의 한쪽 단면에서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버섯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축축한 숲의 습기를 빨아들여 버섯의 표면은 반짝이고 있습니다. 찬찬히 길가를 눈여겨보지 않은 이는 결코 보지 못할 풍경이지요.
전나무의 원래 이름이 젖나무라는 사실도 이 숲에서 알게 됩니다. 전나무는 추위에 강해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는 고산성 교목입니다. 겨울이면 혹독하게 추운 오대산에서도 군락을 이룰 수 있는 이유이지요. 이 나무에 상처가 생기면 하얀 우윳빛 진액이 흘러나옵니다. 이 나무에 ‘젖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건 그런 이유입니다. ‘젖나무’가 ‘전나무’가 된 것이고요.
이 숲을 걷다 보면 한쪽으로 스러진 거대한 나무를 마주칩니다. 그 유명한 할아버지 전나무입니다. 수령이 600년에 달하는 노거수였죠. 2006년 10월에 쓰러져 생명을 다했어도 위엄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길을 걸으며 주의를 기울여야만 알 수 있는 이 숲의 보물입니다.
작은날개
세상을 유랑하는 이. 숲을 거닐고 바다를 헤매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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