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는 것이 살짝 조심스럽기도 하다. 차를 즐기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차에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는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경험을 토대로 차 생활을 좀 더 즐겁게 만들어줄 몇 가지 팁을 소개하려는 의도이니, 방법이라기 보다 차를 우리는 과정 중 좋아하는 순간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물소리 듣기
차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이다. 예부터 차는 물의 신(神)이고, 물은 차의 몸(體)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차를 우리기 적절한 물의 온도를 표기할 공통 단위가 없어 물이 끓는 정도에 따라 세세하게 나누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편리한
도구들이 많다. 물론 이 편리함 때문에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지기도 했다.
내가 처음 물 끓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많은 미팅과 대화가 끊이지 않아 손에 휴대폰을 쥐고 살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늘 고요가 간절했다. 그때마다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낮게 지글지글 끓던 소리가 거센 파도처럼 출렁이는 소리로 바뀌고 물이 완전히 끓어 소리가 멈추면 그 순간 마치 내 마음 속 복잡한 생각도 사라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찻물 끓이는 소리를 차분히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찻물 끓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찻잎 바라보기
찻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차를 다 우리고 난 다음 따로 모아둔 젖은 찻잎에 더 마음이
간다. 바짝 마른 찻잎이 뜨거운 물을 만나 새 생명을 얻은 듯 기지개를 펴며 제 모습을 한껏 보여준 것 같기 때문이다. 녹차를 마시다 보면 아기처럼
작고 솜털이 보송한 새싹이나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초록 잎이 눈에 띄기도 하고, 돌돌 말린 우롱차를 마시다 보면 개완에 한가득 담길 정도로
큰 잎을 만날 때도 있다. 이렇듯 차를 마실 때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잎을 관찰하다 보면 그 찻잎이 자란 곳이나, 찻잎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도 즐겁지만, 찻물을 내어 본래의 모습을 다시 찾은 찻잎을 보는 것도 참 즐겁다.

차향 느껴보기
차는 한 번에 후루룩 마셔 버리기엔 아까운 음료다. 우리기 전부터 다 마시고 난 이후까지 시시각각 다른 향을
남기기 때문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땐 모든 순간을 제대로 즐기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차를 마시는 시간 만큼은 차와 나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해보면 어떨까. 차향을 느끼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눠 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 처음 차에 입문할 때 물을 끓이는 시간이나 찻잎이 우러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조차 어색하고 어려웠는데, 차 생활을 이어가며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다 보니 어느 순간 차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처음엔 낯설 수도 있지만, 차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분명 그 즐거움을 발견하는 때가 올 것이다.
티양
영국과 한국에서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중국에서 평차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차와 관련된 강의를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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