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관련된 영화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차와 관련된 많은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차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꼭 챙겨 보곤 했는데, 차가 단순히 소품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작품을 꼽는다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시사회를 통해 처음 영화를 접했는데, 개봉 이후 극장을 한 번 찾을 만큼 좋았다. 티 소믈리에로서 차를 다룬 작품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유독 인상 깊게 본 작품이다.
<일일시호일>은 일본에서 20년간 40만 부 이상 판매된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영화감독 오모리 타츠시(大森立嗣)가 메가폰을 잡았고, 쿠로키 하루(黒木華)가 노리코 역을, 키키 키린(樹木希林)이 노리코의 차 선생 다케타 역을 맡았다. 2019년 국내 개봉 당시 키키 키린의 유작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일시호일>은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날마다 찻물을 우리는 시간이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채워주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취업도, 연애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스무 살의 노리코는 엄마의 권유로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우연히 차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24년 동안 차 생활을 이어가며 차가 어떻게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이 삶을 배워가는 과정뿐 아니라, 스승 다케타의 주옥같은 대사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울렸다.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내게도 인생을 음미할 수 있는 차가 곁에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다이내믹한 전개를 기대한다면 너무 정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차를 우리는 과정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다실의 풍경, 다채로운 일본식 화과자 등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담아내 보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이 스승에게 다도를 배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결국 차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정갈한 화과자에 부드러운 거품이 가득한 말차 한 잔이 절실해질 것이다. 그리고 차 한 잔과 함께한 오늘 하루가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티양
영국과 한국에서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중국에서 평차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차와 관련된 강의를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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