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 문화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 전설 시대 의학과 농업의 신 신농(神農)이 100가지 풀의 식용과 약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풀을 먹던 중 독초에 중독되었는데 우연히 떨어진 찻잎을 먹고 살아났다는 ‘찻잎 해독설’부터 춘추 전국 시대 명의 편작(扁鵲)이 아버지의 무덤에서 자라난 차 나무를 통해 처방전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차의 기원에 얽힌 설 또한 다양하다. 중국의 차는 해갈과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일차원적 효능에 정신적 역할까지 더해지며 긴 세월에 걸쳐 발전했다. 시대에 따라 차의 제조법이 달라졌고 이에 따라 마시는 법과 차 도구도 변화했다.
당나라 때 문인 육우(陸羽)가 집필한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 <다경>은 차를 약용과 식용으로만 소비하던 것에서 음다(飮茶) 문화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경>에서는 정행검덕(精行儉德, 정성스러운 행실과 검소한 덕망)을 차의 중요한 정신으로 삼았고 ‘차’라는 명칭을 통일하였으며 차의 기준을 체계화하여 후대에 기틀을 세운다. 당시 차는 끓여서 마시는 자차법(煮茶法)이 주류였다. 찻잎을 제다(製茶)하는 기술이 미숙하여, 떡처럼 만들어 건조한 뒤 갈아서 물에 소금을 넣고 끓여 마셨다.
송나라 시대는 차 문화가 꽃 피운 시기였다. 숙박, 음식점, 찻집 등을 겸한 차관(茶館)이 발달했는데, 신분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출입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 채양(蔡襄)의 <다록>과 조길(趙佶)의 <대관다론> 등 다양한 다서가 등장했고, 차를 가루로 만든 뒤, 물에 개어 격불하는 점차법(點茶法)이 유행하였다. 송대의 점차법은 일본으로 넘어가 말차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명나라 때는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병차(餠茶)나 단차(團茶) 같은 덩어리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차 농민의 수고를 덜기 위해 단차 폐지령을 공포하면서 잎차 형태의 산차(散茶)가 탄생하였다. 이 시기부터 다원이 본격적으로 흥하기 시작한다.
청나라 때는 찻잎을 우려서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이 정착했다. 이미 명나라 때 산차를 우려 마시는 포다법이 생겼으나 청나라 때에 활성화되면서 품종에 맞는 제다 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다류가 완성된다. 다구 역시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당시 도자 기술은 최첨단 산업이었다.
중국차 문화는 각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다르고, 지금도 여전히 고유한 전통을 잘 지켜가고 있다.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차 문화 역시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주 소비자층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차 문화가 훨씬 젊어지고 대중화되었다. 밀크티와 버블티를 판매하는 브랜드가 늘었고, 파우더로 제조하던 밀크티에 우유와 과일을 사용하고 찻잎의 종류도 세분화되어 한층 다양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프랜차이즈 차 전문 브랜드와 개성 있는 콘셉트로 꾸민 개인 찻집도 증가했고 메뉴의 폭도 다양해졌다. 이처럼 차는 중국 역사의 일부로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그 변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이슬기
티 큐레이터. 쉼이 되고, 일상이 되고, 예술이되는, 茶로써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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