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꿈을 가진 가드너들의 로망, 메도우브룩 팜박원순 가드너와 함께하는 세계의 정원 투어
박원순23. 05. 10 · 읽음 208

미국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정도 가면 젠킨타운(Jenkintown)이 나온다. 그곳에 메도우브룩 팜(Meadowbrook Farm)이라는 예쁜 정원 겸 농장이 있다. 무료로 정원을 구경하고 식물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펜실베이니아 원예협회(PHS)에서 운영을 맡아, 전문 원예가와 가드너의 손길로 늘 아름답고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원래 이 농장은 닉슨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플로리스트였던 원예가 리돈 페녹 주니어(J. Liddon Pennock, Jr.)의 소유였는데 2003년 협회에 기증되었다. 

페녹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저명한 자선가이자 사교계의 명사이기도 했다. 메도우브룩 팜에는 모나코의 공주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를 비롯해, 줄리 닉슨 아이젠하워(Julie Nixon Eisenhower) 같은 유명 인사가 다녀갔다. 페녹은 또한 펜실베이니아 원예협회 주관 하에 매년 개최하는 필라델피아 플라워 쇼에 깊이 관여하고 있어 ‘미스터 플라워 쇼(Mr. Flower Show)’라고 불리기도 했다. 플라워 쇼는 보통 3월에 열리는데, 페녹은 1971년 이래로 가을과 겨울에 걸쳐 플라워 쇼에 쓰일 식물 대부분을 직접 재배해서 납품했다. 특히 그는 플라워 쇼가 열리는 이른 봄에 꽃이 만발하도록 많은 식물을 촉성 재배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개장하는 메도우브룩 팜의 정원에는 아직도 그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마당이 있는 주택 정원에 적용하면 좋을 만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다양한 식물을 구입할 수 있는 식물 매장. ⓒ 박원순

페녹이 살던 집은 고가구와 골동품, 그림과 조각 등이 어우러져 박물관처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흐른다. 아담한 유리온실이 딸려 있어 거실에서 바로 온실로 갈 수도 있다. 바로 바깥에는 정형화된 화단이 ‘가든 룸(garden room)’을 이루며 조성되어 있고 중앙엔 석상과 분수대가 놓여 있다. 좁은 동선을 따라 정원을 거닐다 보면 발을 내딛는 곳마다 온갖 신기한 품종의 관목과 숙근초가 자라고 있다. 두세 명이 수영하면 딱 좋을 만한 크기의 직사각형 수영장조차도 정원의 일부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과 난간에도 예술적 영감이 녹아 있는 듯하다. 포멀 가든, 폴리네이터 가든, 커팅 가든, 드라이 가든, 레인 가든 등 각 정원은 규모는 작지만 볼거리가 많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끝으로, 식물 매장에는 실내외 정원에서 기를 수 있는 온갖 식물이 새로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계절별로 각자의 정원에 기르고 싶은 식물을 취향대로 맘껏 고를 수 있어 좋다. 

14
박원순
팔로워

서울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후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국제정원사양성과정을 이수하고 델라웨어대학교 롱우드 대학원에서 대중 원예를 전공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에버랜드 꽃축제 연출 기획자를 거쳐 현재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에 <세상을 바꾼 식물 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지은 책에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 <가드너의 일>이 있다.

댓글 14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