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식물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하지만 찍고 싶은 식물을 모두 들일 수도 없고 들인다 한들 식물 킬러에 가까운 솜씨로 열에 아홉은 떠나보낼 게 자명했다. 그래서 친한 후배가 운영하는 꽃집에서 식물을 빌려 사진만 찍고 돌려주기로 했다. 덕분에 다양한 식물을 잠시나마 집에 데려오는 기쁨을 누리고 사진도 실컷 찍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식물을 찍다 보니 꼭 식물 사진관을 차린 것만 같았다. 식물의 안전을 위해 사진을 찍은 뒤 되도록 빨리 반납했다. 평소 ‘식물 살인마’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터라 식물을 집에 잘 들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그 식물에 푹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식구로 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사진 속 아가베 아테누아타가(이하 아가베)다.

처음 꽃집에서 잠시 데려온 아가베는 작고 여린 꼬마 식물이었다. 아가베에 대해 전혀 모르던 때라 그저 이런 식물이 있나 보다 했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가운데에서 뾰족하게 올라와 돌돌 말린 채로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새 잎과 활짝 펼쳐져서 본격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어른 잎들이 이루는 조화, 그리고 단단하면서도 감촉은 부드러운 잎의 우아한 연둣빛. 식물을 반납하고 사진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내내 감탄을 연발했다. 이후 아가베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성장한 아가베가 보여주는 화려한 자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식물원이나 농장에서 아가베만 보면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래도 식물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기에 쉽게 결심을 못하다가 적당한 핑계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식물에 관한 사진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에 찍어놓은 아가베 사진이 뭔가 아쉬웠던 것. 어린 아가베의 모습도 충분히 사랑스러웠지만 충분히 성장한 아가베의 아름다움을 꼭 책에 담고 싶었다. 그 길로 냉큼 꽃시장에 가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아가베를 데려왔다.

내 식구가 된 식물을 찍을 때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다. 농장에서 데려와 가장 건강할 때의 모습을 잘 기억해 두겠다는 결의가 담긴다. 식물을 키우는 솜씨가 재난 수준이다 보니 슬프게도 내가 데려온 식물은 데려온 첫날이 가장 보기 좋고 풍성하다. 그다음부터는 아름다운 건 둘째치고 살아남는 게 과제다. 다행히 데려온 첫날 찍은 사진 속 아가베 아테누아타는 아직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다. 왜인지 줄기는 한쪽으로 점점 휘어가고 차마 잘라내지 못한 마른 잎과 공중 뿌리는 치마처럼 치렁치렁 달려 있지만 여전히 돌돌 말린 새 잎을 품속에서 삐쭉 꺼내 올리고 있다. 덕분에 처음 데려왔을 때 찍은 사진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함께한 시간을 되새길 수 있다.

인물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가족을 찍은 사진은 더 유심히 보곤 한다. 가족을 향한 특별한 마음이 어떻게 사진에 드러나는지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때 나는 언제나 프레임 안에 다 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 안에 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소개될 때까지 아가베가 사진 속 그대로 건강하길 바라는 초조한 마음이 이 사진에서 느껴질런지 모르겠다.
이정현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합니다. 식물은 맨날 죽이지만, 식물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의 친구가 될 식물을 찾아 주는 식물 사진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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