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재료가 들어간 빵을 파는 베이커리, 이름도 맛도 생소한 커피를 파는 카페를 수없이 다녔다. 관성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는 베이커리나 카페를 찾고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를 하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공간, 개성 넘치고 특색 있는 핫플레이스에 조금씩 무뎌진 것 같기도 하다. 트렌드의 변화는 얼마나 빠른지, 내가 예전에 즐겨 찾던 빵집은 이제 문을 닫은 곳이 더 많고, 그나마 남아 있는 곳에도 그때만큼 자주 들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까지 감성적이고 트렌디하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SNS에서 핫하디 핫하다는 카페를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푸근한 동네 빵집에 들러 익숙한 빵을 한 아름 사 들고 와야 하루가 비로소 제대로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3개에 1,000원. 소보로빵, 단팥빵, 슈크림빵 등 과거 재래시장 매대에 깔아놓고 팔던 빵은 으레 이 정도 가격이었다. 묵직하게 한 봉지 꽉 채워도 만 원을 넘는 일은 드물었다. 이것저것 골라 담아 하나하나 까먹는 재미도 좋았다. 맛은 대체로 비슷하게 달았지만. 그래도 그 빵집마다 그 나름의 차이가 있어 한때는 이런 빵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고로케를 좋아한다. 디테일하게는 이탈리안 고로케. 피자와는 또 다른 매력의 피자빵이랄까. 팥빵보다는 초록색 완두 앙금빵을, 하얀 크림빵보다는 노란 슈크림빵이 좋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두툼한 맘모스 빵.
집에 돌아와 빵 꾸러미를 풀어놓고, 커피 물을 올린다. 커피 맛을 전혀 모르던 때도 있었다. 쓴 음료를 마신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마실 줄 아는 커피는 달달한 믹스커피뿐이었다. 무더운 여름, 내 어린 시절의 즐거움 중 하나는 믹스커피를 페트병 가득 담아 얼려 마시는 일이었다. 그 어떤 음료나 아이스크림보다 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릴 정도로 차갑고 달달한 커피. 뒤따라 오는 약간의 씁쓰름함 덕분에 믹스커피의 단맛에 물릴 일은 없었다. 그러다 언제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어디 원두를 어떤 가공 방식으로 처리했는지 따져가며 핸드 드립 커피만 찾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드럽고 달콤한 믹스커피가 투박한 모양만큼 맛도 자기주장이 강한 옛날 빵을 은근히 감싸준다. 슈크림 빵에도, 고로케에도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는 맛이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먹는 재미를 왜 미처 몰랐을까? 옛날 즐겨 먹던 빵에는 옛날에 마시던 커피가 어울리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큼지막한 모카빵에 믹스커피를 곁들이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잊고 있던 또 다른 기억은 없는지 문득 그리워진다.

이하성
빵과 커피에 관한 에세이를 쓴다. 저서로는 <즐거워, 빵과 커피가 있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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