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여행의 장점을 꼽자면 숙소를 정하지 않고도 마음 닿는 대로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디로 갈까?”라는 물음에 “바다!”라고 답하는 아이의 한 마디에 남해로 향했습니다.
남해대교 아래에서 하룻밤
사실 밤새 캠핑카를 주차해 두고 안전하게 하룻밤을 보낼 곳을 찾기란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특히 근래 차박 문화가 유행을 하면서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버리거나 고성방가를 일삼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캠핑 금지’ 현수막이 붙은 곳이 많아졌거든요. 평소 캠핑카 여행을 할 때면 대부분 캠핑장을 이용하지만 저녁 무렵 남해에 도착하고 보니 주변에 캠핑장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비수기라 문을 연 곳을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해대교 아래 한적한 방파제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요. 막 저녁 숟가락을 들려던 찰나 ‘똑, 똑, 똑’ 누군가 캠핑카 문을 두드립니다. 캠핑카를 주차하면 안 되는 장소에 들어온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우와! 캠핑카 좋네예, 이 앞에서 음식점 하는 사람인데요. 캠핑카가 정말 멋져서 구경하러 왔습니다.”
“아, 들어와서 마음껏 보세요!”
그저 캠핑카를 구경하고 싶어서 문을 두드렸다는 말에 안도하며 대답했다가 다음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뜩이나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 낯선 사람과 대면해도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 무언가 가득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깐 굴이라예. 방금 까서 온 거라 진짜 싱싱해요!”
해산물 좋아하는 저야 말할 것도 없고, 굴을 즐기지 않는 남편도 그날 맛본 굴이 세상 태어나 먹은 굴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짜 여행의 내음이었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금산에 오르다
다음날, 다랭이 마을을 구경하고 미조항에서 물메기탕도 먹었어요. 다음 코스는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금산 보리암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금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산 아래쪽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트레킹 시작점으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비수기 평일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원의 말. 캠핑카를 운전을 해서 올라가야 하는데 경사가 꽤 심해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 가 캠핑카는 점점 힘을 잃는가 싶더니 이내 멈춰 버렸어요. 결국 그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사륜구동을 금산에서 쓰게 되었지요. 계획성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저희의 여행 방식 때문에 오후 늦게서야 트레킹의 시작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이튿날 아침에 오를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나 산 위 주차장에서의 밤샘 캠핑은 금지였습니다. 다행히 길이 좋아 아이도, 저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어요. 그토록 바라던 대로 보리암 금산 산장에서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컵라면 먹기 미션도 성공했고요.
그날 밤은 남해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친구와 우연히 연락이 닿아 신세를 질 수 있었습니다. 캠핑카 여행을 시작한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죠. 친구네 아버님께서 직접 잡은 산낙지 파티와 어머님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그간의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었어요. 게다가 밀린 빨래까지! 코로나19로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진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 냄새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민아
정민아, 오재철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등을 출간했으며, 현재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 강연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가족이 캠핑카로 전국을 돌며 유튜브 ‘라니라니tube’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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