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세상을 뒤흔든 지 벌써 3년째입니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음식’이라는 기사 제목이 포털 사이트에서 자주 눈에 띕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의 내용은 정말 사실일까요?
2020년 초 인도에 확진자 수가 적었을 때만 해도 인도인이 코로나19에 덜 걸리는 이유는 카레를 많이 먹은 덕분이라는 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카레에는 건강에 유익한 향신료가 풍부합니다. 카레의 노란색을 내는 식재료 강황에 대한 연구 자료도 많습니다. 염증을 낮추는 효과, 항균 작용, 심혈관계 질환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말 카레와 같은 음식으로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2022년 2월 25일 기준 인도의 누적 확진자는 4,290만 명, 사망자는 51만 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카레를 많이 먹어서 코로나19에도 강할 거라는 예측을 크게 빗나간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면역력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용어입니다. 면역은 무조건 강할수록 좋은 힘이 아닙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 1형 당뇨병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경우를 봐도 면역이 강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처럼 대상이 잘못된 면역 반응이 생겨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으로 사망하는 원인 중의 하나 역시 과도한 면역 반응입니다. 특정 음식을 먹고 면역력을 키워서 질병을 예방하거나 이겨낸다는 생각은 사실과 거리가 먼 셈입니다.

체온을 올려주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당근, 도라지, 미나리, 부추, 무, 대추, 생강 같은 음식을 먹으면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추운 날이면 주요 기사로 올라옵니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되는 과정에서 열을 냅니다. 다이어트를 하면 추위에 더 민감해지고 반대로 과식을 하고 나서는 추위가 덜 느껴지는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7가지 음식이 특별히 다른 음식보다 체온 유지에 더 큰 도움을 준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 몸속 깊은 곳의 심부 체온은 항상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됩니다. 뜨거운 음료나 음식을 먹으면 피부 체온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땀이 나면서 몸을 식힙니다. 이열치열이란 말처럼 더운 날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도리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추운 날 온돌방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차 한 잔이 체온을 1도 올려서 면역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실은 체온과 건강의 관계도 복잡합니다. 체온을 높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열이 과하면 해롭습니다. 오랫동안 체온이 높게 유지되면 대부분의 인체 장기에 부담을 주며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TV, 라디오, 신문부터 유튜브까지 여러 대중매체에서 특정 식품에 비타민C가 들어있어서 면역에 좋다, 비타민A가 풍부해서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등의 이야기가 매일 같이 등장합니다. 음식이 면역체계에 중요한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장기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으면 면역체계는 물론이고 목숨을 유지하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잡식동물입니다. 특정 음식이나 영양성분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할 때 건강합니다. 우리의 건강에 중요한 건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전체 식사 패턴입니다.
그런데도 특정 음식이 면역력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건 누군가의 마케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역병으로 모두가 고생해온 지난 시간을 생각해봐도 답은 명확합니다. 손을 씻고 거리두기를 하고 백신을 맞는 걸로 건강을 지키는 데는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먹어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생각에 음식에 대해서는 유독 더 특별한 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건강에 필요한 음식의 기준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울 이유는 없습니다. 집과 옷처럼 음식도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면 충분합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면서도 건강한 삶을 즐길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정재훈
약사이자 푸드라이터다. TV, 라디오, 팟캐스트, 잡지 등 여러 매체에서 음식과 약에 대해 과학적 시각으로 정보를 전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정재훈의 식탐>,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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