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은 당나라 때 들어온 뿌리 식물로, 붉은색이 난다고 해 홍당무라고도 불렀다. 한자로는 ‘당나복(唐蘿蔔)’, ‘호나복(胡蘿蔔)’, ‘홍나복(紅蘿蔔)’이라고 썼다. 우리나라 기록을 살펴보면 서유구의 <임원경제지>(1800년대)에 ‘당근 죽(호나복죽胡蘿蔔粥)’이 나온다. 조리법은 나오지 않지만 당근 죽은 속을 이완시키고 기를 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근을 주로 말의 사료로 알고 잘 먹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나?
당근의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쳐 재배되었다. 유럽에는 10∼13세기에 아랍 지역으로부터 전해졌다. 중국에는 13세기 말 원나라 초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왔으며 한국에서는 16세기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
당근은 조선 왕이 신하에게 하사한 귀한 채소였다. 당시 왕은 신하에게 여러 가지 음식을 선물로 내리곤 했다. 명절이면 음식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선물한 음식 목록을 살펴보면 대개 고기, 말린 생선, 견과류, 술 등으로 채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해남 윤씨 집안의 고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왕실의 하사품 중에는 ‘홍당청(紅唐菁)’이 나온다. 1629년 10월 2일, 봉림대군의 사부인 윤선도가 병이 나자 왕실에서 홍당청 세 단을 하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홍당청이 홍당무, 즉 당근이다. 당근은 16세기 조선에 전래되어 재배되기 시작했으니 홍당무는 병이 난 스승에게 보내는 귀한 채소였던 것이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에게 당근은 김치를 대신한 귀한 채소이기도 했다. 스탈린 치하 소련 시절,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 김치를 담글 수가 없어 대용으로 당근 무침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당근을 채 썰어 소금에 절인 후, 식초, 설탕, 마늘, 고수씨, 고춧가루 등에 버무린 이 고려인식 당근 무침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다른 민족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아 널리 퍼졌고, 러시아어로 '한국 당근'이란 뜻의 ‘카레이스카야 마르코프’라고 부른다. 현재는 러시아 요리, 중앙아시아 요리를 파는 음식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왜 건강한 채소인가?
환절기 건강엔 당근이 제격이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해독제로 쓰였고, 인삼 재배가 어려운 일본에서는 인삼에 버금가는 약재로 여겨졌을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다. 당근 속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면역력을 향상해 주고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 원기회복에도 도움을 주어 만성피로를 예방한다. 당근 속 플라보노이드와 비타민C는 역시 면역력을 높이고 피부를 맑게 하는 항산화 효과가 있다. 윤기 있는 모발과 탈모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근에 장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도와주는 비피두스균 생성 조력자인 비피더스 인자가 있어서 변비나 과민성 대장염 같은 기능성 장질환에 도움이 된다. 암 예방에도 탁월한데, 미국 암 연구소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당근 섭취가 식도암 발병률을 60퍼센트까지 줄이고 위암과 폐암까지도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근에는 설탕과 맥아당, 과당 등이 들어 있어 단맛도 강하다. 특히 항산화 작용이 있는 식물 영양소인 카로틴이 많다. 체내에서 비타민A 작용을 한다. 비타민C도 많이 들어 있으나, 산화 효소가 많아서 갈거나 썰면 쉽게 산화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어떻게 먹어야 할까?
당근은 소화 흡수율이 낮아서 볶거나 익혀서 먹는데, 익히지 않을 경우에는 오일 드레싱을 곁들여 먹는 것이 좋다. 육류나 녹황색 채소와 함께 먹으면 단백질이 보충되고 비타민 흡수가 더 잘 된다. 하지만 무나 오이 같은 채소와 섞어 즙을 낼 경우는 비타민C를 파괴해 이런 경우 식초를 넣거나 당근을 익혀서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당근의 베타카로틴 성분은 주로 껍질에 집중되어 있어서 잘 씻어 껍질째 먹는 것도 좋은 섭취 방법이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물을 많이 먹고 채식에 기반한 한식을 최고의 건강식으로 생각한다. 자칭 한식전도사. 저서로는 <채소의 인문학>, <밥의 인문학>, <조선 왕실의 밥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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