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따라가면 만나는 푸른 바다육지에서 가장 멀리, 제주 서귀포
최갑수22. 07. 15 · 읽음 12,598

일 년에 서너 차례 제주를 찾는다. 여행이 우리가 당면한 어떤 문제를 하나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회의와 이메일과 반복되는 수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는 훌쩍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래서 가는 곳은, 바다를 건너 한라산을 빙 돌아 닿는 곳은 서귀포다. 한국에서 내가 마주한 문제와 가장 멀어질 수 있을 듯한 곳. 돈내코며 쇠소깍, 외돌개, 톰베낭길, 속골, 월평포구 등 오직 제주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로 붙여진 지명을 입속에서 오물거리다 보면 걱정 같은 건 잊게 된다. 이러면 서귀포 여행의 감흥도 더 진하게 올라와 기분이 좋아진다.

서귀포 시내 옛 삼일극장 일대에는 이중섭 거리가 있는데, 슬렁슬렁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화가 이중섭은 한국전쟁 당시 서귀포에서 피란생활을 했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의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고달픈 생활을 했다. 당시, 먹을 쌀이 없어 고구마와 게를 삶아 끼니를 때우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이중섭이 살던 초가집도 복원되어 있고 그 옆에는 전시한 이중섭미술관도 있다. 이중섭 거리에서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공예품을 만드는 자그마한 공방, 카페와 꽃집 등을 기웃거리다 보면 제주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도 슬며시 피어오른다. 

대평리. Ⓒ 최갑수

서귀포 남서쪽의 대평리도 꼭 찾아가는 곳이다. 제주올레 8코스와 9코스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작은 해안 마을이다. 현지에서는 대평리를 난드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제주로 이주한 뭍 사람들도 많이 사는 지역으로, 이주민과 지역민이 잘 조화를 이뤄 예쁜 마을을 이루었다. 감귤나무며 동백나무가 심어진 돌담이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나박나박 걷다 보면 어느새 푸른 마늘 밭이 펼쳐지고, 마늘 밭 너머로는 마늘 밭보다 더 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드문드문 들어선 개성 있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평화로우면서도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대평리. Ⓒ 최갑수
대평리. Ⓒ 최갑수
박수기정. Ⓒ 최갑수
박수기정. Ⓒ 최갑수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빨간 등대가 서 있는 대평포구에 닿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 조각상이 서 있는 등대 뒤로는 수직 해안 절벽인 박수기정이 병풍처럼 솟아 있다. 박수기정이란 박수와 기정의 합성어로, ‘바가지로 마실 샘물’(박수)이 솟는 ‘절벽’(기정)’이라는 뜻이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100여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박수기정 절벽과 드넓은 바다는 한데 어우러져 장엄한 풍광을 연출한다.

군산오름. Ⓒ 최갑수

대평리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군산 오름은 정말 좋아하는 오름이다. 334.5미터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의 거의 4분의 1을 볼 수 있다. 모슬봉과 송악산, 수월봉, 산방산 등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 반대편으로는 한라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중문 관광단지를 비롯한 서귀포시 지역의 명소까지 모두 발아래 있다. 안덕계곡과 대평리 사이의 좁은 도로를 이용하면 군산 오름 정상 턱밑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오름에 올라 제주의 느긋한 풍경을 내려다볼 때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약간의 각오와 약간의 여유 그리고 즐겨보자는 마음가짐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고,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여기는 서귀포니까, 여행을 떠나왔고, 걱정은 바다 건너 아주 멀리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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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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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여행작가. 아주 오랜 여행자다.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이번 생이 약간 다행스럽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ldquo;여행이란 뭘까요?&rdquo; 하고 묻는 이들에게 &ldquo;위로 아닐까요&rdquo;라고 대답한다. 여행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끌어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밤의 공항에서>,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등의 에세이와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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