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룸(heirloom) 토마토’라는 단어가 처음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7년여 전, 해외 푸드 매거진의 토마토 요리 레시피를 접하면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가보’라는 직역 말고는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가 없어 토마토의 한 품종이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토마토 맛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던 때라 얼마나 대단한 품종이길래 콕 찍어 이 토마토를 사용하라고 했을까, 셰프 참 유별나네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한 2년 전쯤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힙한’ 토마토가 에어룸 토마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예약 행렬에 합류했고, 드디어 작년 봄께 에어룸 토마토를 맛볼 수 있었다. 먼저 이색적인 생김새와 빛깔에 눈길이 갔고 미세하긴 하나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 신기했다. 단맛과 짠맛을 극대화한 ‘요즘 품종’과 비교하면 맛은 오히려 심심한 편이었지만, 치즈를 곁들여 샐러드로 먹으니 ‘이래서 그때 그 셰프가 에어룸 토마토를 사용하라고 했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에어룸 토마토는 수확한 열매에서 직접 씨앗을 얻는 자가채종(自家採種)으로 재배한다.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접하는 토마토는 우수한 종자끼리 교배해서 만든 첫 대 종자인 F1을 사용했을 확률이 크다. F1 종자는 수확량은 많지만 우수한 형질이 유전되지 않아 해마다 새로운 씨앗을 구입해야 한다. 국내에 에어룸 토마토 열풍을 일으킨 그래도팜(@farm_nevertheless)의 원승현 대표는 올해로 3년째 같은 농장에서 직접 채종한 씨앗으로 20여 가지의 토마토를 재배 중이다. 그에 따르면 자가채종한 종자는 F1 종자에 비해 균일성과 생산성이 떨어져 농작물의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육묘 단계부터 쌍둥이처럼 일정하게 자라는 F1 품종과 달리 품종별로 성장 속도가 다르고 같은 품종 내에서도 육묘 상태가 고르지 않아 각기 다른 관리와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토마토 농가는 재배하도, 팔기도 훨씬 수월한 F1 종자를 구입해 심는 쪽을 택한다. 비단 토마토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며, 오늘날 마트의 과채류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모양도 색도 맛도 향도 모두 천편일률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에어룸 토마토를 비롯해 사라져가는 가치 소비재는 많습니다. 운영은 더 힘들면서 마진율은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많은 생산자가 가치 생산을 포기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에 가치 소비가 확대되어야만 농업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품 가격이 높게 형성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제품에 합당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소비자의 피드백이 있어야 생산자는 제품 생산을 유지할 동력이 얻기 때문입니다.”
열 살쯤 됐을까. 햇빛이 유독 따가웠던 초여름, 엄마아빠를 찾으러 밭에 나갔다가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를 지나치지 못하고 덥석 따서 바지에 쓱쓱 닦아 먹은 기억이 있다. 요즘의 대저 토마토나 스테비아 토마토처럼 드라마틱한 맛은 아니었지만 짠맛, 단맛, 신맛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맛이 참 좋았다. 30여 년 전 일이지만 토마토 특유의 풋내도 어렴풋이 콧가에 맴돈다. 요즘 토마토는 왜 그런 맛이 안 날까 문득문득 아쉬웠는데, 그래도팜의 에어룸 토마토를 먹으며 어린 시절 그 기억이 딱 떠올랐다. 이게 바로 음식이 가진 힘이 아닐까.

현재 그래도팜에서 소개하는 품종은 이전에 없던 것일 수는 있으나, ‘에어룸 토마토’ 자체는 오히려 과거 전통 농업에서 더 접하기 쉬운 형태였을 것이다. 이 지구상엔 엄청나게 다양한 품종의 농산물이 있고, 더 많은 사람이 소비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렸으면 한다. 크고 매끈하고 당도가 높은 것에만 치우치지 말고 다양한 상품을 경험해 보고 본인 입맛에 맞는 것을 찾는, 조금 까다로운 소비자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그 과정에서 왜 시중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지, 왜 모양이 다르게 생겼는지 곰곰이 따져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품을 선택하고 싶은 이유를 스스로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
푸드에디터MJ
<우먼센스>, <레몬트리>, <여성중앙>,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서 푸드 에디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에이전시 올뉴코퍼레이션에서 푸드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태생적으로 입맛이 예민한 편이지만 10년 넘게 푸드 에디터로 생활하고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그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1차 생산물을 구입할 땐 생산자를 꼼꼼히 따지고 가공품은 라벨부터 읽으며 맛간장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세상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음식에 대한 애정이 넘치며 먹는 것을 사랑해 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최근 유튜브 채널 이미델리를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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