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사이에 채소를 메인 식자재로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채소는 몸에 좋으니까 당연히 먹어야 한다는 당위적 접근이 아니라, 완성된 요리로서 충분히 맛있고 가치 있음을 보여주는 셰프가 많아졌다는 것도 반길 만한 일이다. 여러 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농부가 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과거 셰프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하고 싶은 요리가 있어도 국내에서 식자재를 구할 수 없어 포기했다거나, 직접 길러 사용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더러 들었는데, 최근엔 일반 소비자도 얼마든지 특수 채소를 구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몇 해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는 채소생활(@vegelab)은 충남 홍성에 위치한 소규모 농장에서 매해 다양한 품종의 채소를 탐구하고 그 결과물을 채소 박스, 채소 레슨 등의 형태로 공유하는 브랜드다. ‘채소가 가진 매력과 신비, 재미와 의미, 맛과 멋을 탐구’라는 슬로건이 딱 맞는 곳이다. 공식 SNS 계정만 방문해 봐도 해외 파머스 마켓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슈가스냅, 로마네스코 브로콜리, 브로콜리니 등 생경한 이름의 채소뿐만 아니라 무, 감자, 호박, 가지같이 친숙한 채소의 다양한 품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소생활에서 소개하는 품종은 50여 가지. 연구를 위해 실제 재배하는 채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세상에는 약 30만 종의 식용식물이 있고 그중 2,000여 종만 의미 있는 양으로 재배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더 다양한 채소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식문화가 풍성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채소생활의 농장을 책임지고 있는 박형일 농부는 세상에 매력적인 채소가 많은데 정작 우리 식탁에서는 그 다양성과 가치가 충분히 실현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시설하우스와 노지 재배를 병행하는 채소생활은 유기농의 가치와 방법론을 따른다. 유기농은 영농방법이기 전에 삶의 방식이자 문화라고 말하는 박형일 농부는 단순히 화학적인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유기농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채소생활이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며 직거래를 하는 것은 기존 유통에서 사라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친환경적인 재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자연과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청년 귀농인을 중심으로 단기적 수익 창출보다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고민하며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추구하는 소농이 늘고 있다. 채소생활을 만든 이윤선 대표는 우연찮게 들른 농장의 당근에 반해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땅에서 당근 하나를 뽑아 드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은 잎 잘린 당근은 진짜 당근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있지 않은 음식을 먹었구나,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채소생활 SNS 계정을 둘러보다 보면 당근이 원래 이렇게 생긴 거였구나 혹은 호박이라고 다 같은 호박이 아니구나,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채소는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구나 등등 새롭고 신선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가 다양한 채소의 매력을 알아봐 줄 때 생산자도 보람을 얻고 결과적으로 지속 가능한 먹거리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다양한 호박을 소개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엄청난 경쟁률이 예상되지만 이번에야말로 나의 광클 실력을 보여줘야지!
푸드에디터MJ
<우먼센스>, <레몬트리>, <여성중앙>,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서 푸드 에디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에이전시 올뉴코퍼레이션에서 푸드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태생적으로 입맛이 예민한 편이지만 10년 넘게 푸드 에디터로 생활하고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그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1차 생산물을 구입할 땐 생산자를 꼼꼼히 따지고 가공품은 라벨부터 읽으며 맛간장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세상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음식에 대한 애정이 넘치며 먹는 것을 사랑해 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최근 유튜브 채널 이미델리를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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