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 씨앗으로 빵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식물화가 조현진의 양귀비 이야기
조현진22. 07. 05 · 읽음 4,164

어릴 적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무서운 국수를 기억합니다. ‘특급 요리사’가 되기 위한 요리 대회 결승전, 최종 경쟁자 대여섯 명이 서로의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는 시간이었어요. 한 요리사가 검은 국수를 내놓았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끌어당기는 맛이라며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때, 이 맛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들이 국수를 뱉으며 외칩니다. “이 요리에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될 위험한 재료가 들어있어! 바로 중독을 일으키는 양귀비 열매!”

양귀비. 경국지색으로 알려진 옛 중국 미인에서 유래한 이름과,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꽃송이는 누구나 알지만, 실물로 보기란 정말 어렵지요. 재배와 소유가 엄격하게 금지되었기 때문이에요. 애니메이션에 나왔듯, 양귀비는 아편을 만드는 위험한 식물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양귀비 씨앗을 듬뿍 넣어 빵을 만들기도 합니다. 요리 대회 우승을 위해 서슴없이 양귀비 국수를 내놓은 애니메이션 속 악당이 생각나는데요, 이 빵은 먹어도 괜찮은 걸까요? 이런 무서운 식물의 씨앗으로 빵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조현진

양귀비 씨앗은 식용이 가능하며, 특유의 맛과 향이 있기 때문이다

1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는 미세한 크기의 검은콩처럼 생긴 양귀비 씨앗. 유럽에서는 양귀비 씨앗을 여느 식자재처럼 씁니다. 햄버거 빵 표면에 흩어진 참깨처럼, 음식에 뿌리면 특유의 향을 더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고 해요. 씨앗을 그라인더로 갈아 만든 검은 페이스트를 듬뿍 넣어 케이크, 페이스트리나 롤을 만들기도 합니다. 단팥빵의 팥소처럼 쓰는 것이지요. 맛은 견과류처럼 기름지며 고소하대요. 또, 인도에서는 카레에 쓴다고 합니다.

그 무서운 양귀비의 씨앗인데 먹어도 괜찮을까 궁금하실 거예요. 대답은 예스입니다. 아편은 다 익지 않은 양귀비 열매 겉면에 상처를 내어 흐르는 유액을 채취해 만듭니다. 반면 잘 여문 열매에서 털어낸 씨앗에는 아편 성분이 아주 적은 양밖에 남지 않기에 식용이 가능하다고 해요. 다만 씨앗에도 분명히 모르핀이 들어 있어서, 양귀비 씨앗 빵을 먹었다가 마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양귀비 씨앗으로 만든 빵. 호기심이 동하는 메뉴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마약류 관리법에 따르면 양귀비 식물체뿐 아니라 종자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불법이며,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천만 원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니까요.

양귀비 꽃밭에서

우리 주변의 양귀비를 돌아봅니다. 때론 아편 양귀비와 꼭 닮아 ‘이거 혹시?’ 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비슷한, 양귀비의 형제 식물들이 우리 곁에 화초로 함께하고 있거든요. 꽃밭에 무리 지어 심으며, 주로 붉은색이나 분홍색, 혹은 두 색이 섞인 꽃을 피우는 것은 개양귀비이고, 봄철 길가 화단에서 볼 수 있는 흰색, 노란색, 주홍색 꽃은 아이슬란드 포피, 즉 아이슬란드 양귀비입니다. 이들은 불법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아편을 만들 수도 없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처음 본 양귀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실물로 보신 적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약이 귀했던 어려운 시절에는 양귀비를 몇 포기 심어 가꾸는 집이 종종 있었는데, 예쁜 꽃도 보고 약으로도 썼다고요. 요즘은 양귀비를 적발하는 데 드론까지 동원하기에, 매년 봄이면 누군가 몰래 양귀비를 재배했다는 뉴스를 들을 수 있지요. 마당 한 켠에 빨간 양귀비꽃이 핀 오래전 풍경. 양귀비 씨앗을 먹는 나라의 이야기처럼 아주 멀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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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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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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