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룰 나무는 누군가에겐 낯선 식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메타세쿼이아인데요, 우리말 이름이 있는 개나리나 진달래와 달리, 학명을 그대로 가져와 이름으로 삼았기에 더욱 그렇지요. 그렇지만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식물입니다. 아파트 단지, 학교, 공원이나 길가에 여러 그루 심은 메타세쿼이아를 쉽게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우산처럼 뾰족한 모양새에 키는 훌쩍 크고, 부드러운 연둣빛이 감도는 깃털 모양 잎사귀를 가진 나무. 하단의 그림을 보신다면, 아, 이 나무 이름이 바로 메타세쿼이아였구나! 하실 듯합니다. 담양의 아름다운 관광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기억하실 수도 있겠고요.
메타세쿼이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 들여온 지 그리 오래된 나무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잘 자라며, 성장 속도가 빨라 몇 년이면 짙은 녹음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나무이지요. 그러니 지구 어딘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심어 가꿨으려니 생각할 법합니다. 그럼 여기서 문제. 100년 전, 그러니까 1922년에 메타세쿼이아는 어디에 심었을까요?

그 어디에도 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메타세쿼이아를 단 한 그루도 가꾸지 않았습니다. 의아하지요? 100년 전만 하더라도 메타세쿼이아는 그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발견된 적 없는 식물이었기 때문이에요.
메타세쿼이아는 1억 5천만 년 전, 그러니까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의 화석 속 식물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1941년, 교토대학교의 미키 시게루 박사가 이 화석 속의 식물을, 세쿼이아와 비슷하다는 뜻인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을 붙인 속으로 정리했고, 2년 뒤인 1943년 중국의 한 공무원이 양쯔강 상류 리촨 시에서 당시 미확인 나무였던 메타세쿼이아의 실물을 발견합니다. 다만, 이때에는 전쟁으로 인해 깊이 헤아려보지 못했고, 3년 후인 1946년에야 난징대학교의 완춘 쳉 박사가 이 식물이 화석 속 메타세쿼이아라는 사실을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멸종되어 화석으로만 남은 줄 알았던 식물이 생존해 있다니. 메타세쿼이아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해요. 메타세쿼이아가 확인된 지 1년 만인 1947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아놀드 수목원에서는 메타세쿼이아 종자를 수집해오는 한편, 미국의 미주리 식물원, 영국의 큐 가든 등 세계의 여러 수목원에 배포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메타세쿼이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자생지의 메타세쿼이아는 베여 나가고 있던 상황이기에 발견이 더 늦었다면 그대로 아무도 모르게 멸종해버렸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참 다행이지요.
돌아온 메타세쿼이아
이렇게 전 세계 곳곳에 심기 시작한 메타세쿼이아.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에 들어왔습니다. 아름다운 가로수가 아니라 베어서 쓰기 위한 용도로요. 목재가 가볍고 방음 효과가 큰 데다 붉은빛이 아름답기 때문에 건물 내장재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메타세쿼이아는 들여온 것이 아니라,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경북 포항에서 메타세쿼이아 화석이 발견되었거든요. 까마득히 먼 옛날, 우리 땅에서도 메타세쿼이아가 자랐던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곳곳에서도 화석이 발견되므로 공룡이 살던 그 시절에는 메타세쿼이아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했다는 뜻일 테고, 따라서 중국에서 가져와 전 세계에 심은 메타세쿼이아 중 꽤 많은 수가 제자리로 돌아간 셈이 되겠지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메타세쿼이아 여러 그루가 심겨, 아니 돌아와 있습니다. 이들이 지나온 오랜 시간을 헤아려보니, 우리 일상의 한 귀퉁이가 낯설어 보입니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만큼요.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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