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언제 끝나려나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서 선선한 가을 냄새가 묻어납니다. 하늘도 나날이 푸르고 높아져 갑니다. 식물도 가을을 맞아 변합니다. 봄에 꽃을 피우고, 꽃가루받이를 한 뒤 여름에 열매를 맺고 열매에 살을 찌워 갔다면 가을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풀들은 일찍 열매가 익는 경우가 많지만 나무들은 열매가 큰 편이라 빨리 익지 않습니다. 벚나무, 산딸기 등 초여름에 익는 열매도 몇몇 있습니다만 주로 가을에 열매가 익습니다.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방에서 겨울에 휴식기를 갖고 이듬해 봄에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가을에 준비를 해야겠지요. 식물은 번식을 위해 멀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동물과 달리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주로 동물들이 겨울을 준비하면서 가을에 많은 열매를 먹기 때문에 가을에 열매가 많이 익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을 타고 가는 열매들은 딱히 가을에만 번식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을이 서늘하고 건조해서 열매가 마르기 좋아 역시 가을에 익는 게 많습니다.

씨앗은 왜 멀리 가려고 할까?
식물에게 씨앗은 사람으로 치면 마치 자식과 같습니다. 그럼 그냥 엄마 나무 곁에 떨어져서 모여 살면 되는데 왜 굳이 멀리 가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엄마나무 곁에 있으면 엄마나무의 그늘에 가려 햇빛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 둘째, 형제들끼리 모여 있으면 햇빛과 양분의 경쟁을 피할 수 없으므로 서로 멀리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나무를 벗어나서 멀리 가더라도 다른 나무 그늘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무는 그늘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늘에서 잘 견디는 내음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물은 주로 질소, 인산, 칼륨 세 가지 거름 성분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의 양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세 가지 요소가 식물 대부분이 필요로 하는 양분입니다. 따라서 형제간이 아니라도 어딜 가더라도 양분경쟁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식물이 멀리 가려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식물은 산불이나 병충해와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동물처럼 움직이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다가는 모두 다 한꺼번에 죽게 됩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을 때 최대한 멀리 멀리 간격을 벌려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식물의 씨앗이 멀리 가려고 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에 나가는 씨앗들
가을이 되면 식물들은 멀리 여행할 준비를 하는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종류에 따라 그 열매와 씨앗이 모두 다르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데굴데굴 굴러서 이동하거나, 바람, 비, 물 등 자연 환경을 이용하는 것과 동물에게 먹히거나 몸에 붙어서 이동하거나 합니다. 모든 씨앗이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저마다 자라고 있는 환경의 특성에 따라 멀리 가기 위한 디자인을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생명체가 이유 없이 디자인이 되었을까요?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지요. 나는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듯이 내게 맞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다양한 모양의 씨앗들에게서 그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황경택
2009 부천만화대상 어린이만화상을 수상한 만화가이자 숲해설가. 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풀과 나무, 곤충을 그립니다. <꼬마애벌레말캉이> <우리 마음 속에는 저마다 숲이 있다> <숲 읽어주는 남자> <자연을 그리다> 등을 펴냈습니다. 황경택 생태놀이연구소 카페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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