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물로 성분을 뽑아낸 음료로, 그 안에 다양한 향미가 숨어 있어 한 잔 한 잔이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잔을 마시다 보면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맛을 알게 되고 이후로는 그 맛을 내는 커피를 찾아서 즐기게 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은 없다. 대신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커피를 즐기는 다양한 이들의 기호에 맞춰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활용해 각양각색의 향미를 구현할 수 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4 단계 과정을 거친다.
그린커피 선별 -> 적절한 로스팅 -> 적절한 추출 -> 알맞은 온도에서 즐기기
(출처 : <그린커피>(2015, 신혜경 저, 커피투데이) 중 ‘한 잔의 커피를 위한 일련의 과정’)
이 모든 과정을 정확히 알고 이해해야 한다. 각 과정이 상호보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커피를 만들기란 쉽지가 않다. 각 단계에서 최상의 상태와 결과를 만들어내야 결국 최상의 맛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매 과정이 커피를 제대로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므로 그만큼 많은 연구와 훈련이 필요하다.

커피 한 잔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원하는 향미를 가진 그린커피(green coffee, 커피 생콩, 생두, 그린커피빈 등 다양하게 표현되나 이하 그린 커피로 칭함)를 잘 선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품종의 종자를 어떤 환경 조건(고도, 토양, 강우량, 온도, 바람, 그늘 등) 아래 재배했는지, 언제 어떻게 수확했는지, 어떤 가공 과정을 거쳤는지, 얼마 동안 보관한 뒤 수출했는지 등에 따라 그린커피의 향미와 특성이 결정된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얼마간의 운송 기간을 거쳤는지에 따라 그린커피의 향미는 유지되거나 변화된다. 원하는 그린커피를 구매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커피 산지에서 커핑(cupping, 커피 향미를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 그린커피를 구매하거나, 국외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그린커피 샘플을 받아 맛본 뒤 필요한 커피커피를 구매할 수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향미는 그린커피 선별 단계에서 70퍼센트 이상 결정된다. 밥을 할 때 쌀, 보리, 찹쌀, 현미 등 어떤 잡곡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이고,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그 다음은 선택한 그린커피를 적절한 프로파일로 로스팅(roasting, 열로 볶는 과정)한다.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에서 강의한 에스프레소 전문가 팀 오코너(Tim O’Connor)와 문준웅 이학박사는 “에스프레소의 핵심 가치는 그린커피에 들어있는 향기와 맛 성분을 정확히 알고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하여 적절하게 로스팅하고 블렌드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서, 로스팅 자체의 기술력보다 그린커피의 특성을 알고 그에 적합하게 프로파일을 구상해 로스팅 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린커피가 지닌 고유의 향과 맛을 얼마나 잘 발현시켰는가에 따라 커피 한 잔의 맛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로스팅한 원두로 원하는 향미를 내기 위해 적절한 도구와 방법을 선택해 추출할 줄 알아야 한다(brewing). 커피의 향미는 사용하는 추출 도구와 방법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추출법과 도구 사용법도 물론 알아야 하지만, 그보다 로스팅한 원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눈으로 원두의 색깔을 살펴 볶음도를 가늠하고 그 맛과 향을 예상해야 하며, 분쇄기에 가는 동안 부서지는 상태를 살펴 커피 조직의 강도와 밀도를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물이 침투하여 커피의 성분을 녹이고 분리시켜 추출되는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것이 적절한 추출법과 도구를 선택하고 추출 과정도 설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출은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도록 볶아진 원두의 상태에 기반하여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추출된 커피 원액을 원하는 농도와 온도로 적절하게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커피는 농도와 온도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추구하는 커피의 향미에 맞춰 적절한 농도를 정하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즐기면 최상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커피를 즐기느냐에 따라서도 그 맛과 향은 달라질 수 있다.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을 만들 수 있다. 원하는 향미를 생각하고, 그에 부합하는 그린커피를 선별한 뒤, 그 특성에 맞게 로스팅하고 추출하여 원하는 온도와 농도로 맞게 즐기는 것이다. 그린커피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모르면 제대로 로스팅을 할 수 없고, 로스팅된 원두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에 맞는 추출을 진행할 수 없다. 이처럼 각 과정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량 있는 바리스타라면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신혜경
한림성심대학 겸임교수,젬인브라운 카페,한국커피협회 이사,<신혜경의 커피톡>칼럼 연재중, 그린커피, 커피매니아되기1, 2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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