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과정은 커피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인 발효 과정에 대해 알아봅니다
신혜경22. 07. 25 · 읽음 2,047

커피의 맛은 품종, 재배 지역, 수확과 가공, 로스팅, 보관 추출 방법 등 씨앗에서 시작해 한 잔의 음료가 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중 가공은 수확한 커피 체리의 과육을 벗겨내고 그 속에 있는 씨앗을 밖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열매에서 과육을 벗겨낸 씨앗을 그린커피(green coffee)라고 말한다. 커피 체리는 변질을 막기 위해 통상 수확 후 3시간 이내에 가공 공정을 시작해야 한다. 

맥주는 종류에 따라 상면 발효, 하면 발효 등의 공정을 거치고 와인은 오크통에 담아 일정 기간 발효시킨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가공 공정에 따라 다양한 발효 과정을 거친다. 가공 방법은 수확 후 선별한 커피 체리를 그대로 건조시키는 자연 건조 방식, 반건조 방식, 물에 씻는 수세 방식 등 여러 가지다. 어떤 가공 방식을 택하든 발효 과정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자연 건조 방식과 반건조 방식은 커피 열매를 자연적으로 건조하는 과정에서 미생물이 생성되어 발효가 일어난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커피 체리 그대로 혹은 껍질을 벗긴 커피 체리를 대기 중에 일정 시간 놔두어 과육에서 미생물이 생성되도록 하는 건식 발효 방식이다. 이 과정은 대기 중에 노출하는 시간을 잘 맞춰 발효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 iStock/jes2u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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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tock/A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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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 방식은 커피 체리의 과육을 벗기고 물에 담가 점액질(과육을 벗거낸 씨앗에 붙어 있는 펙틴층)을 제거하는 방법인데, 이 공정에도 발효가 일어난다. 이때 물의 온도와 담가 두는 시간을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물속에 떠다니는 미생물이 커피콩에 붙어 악취가 나는 결점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물에 담근 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커피콩을 신속하고 깨끗하게 여러 번 헹궈내는 것이 필수다. 이런 과정을 일명 습식 발효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에서 무산소발효라는 새로운 가공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수확한 커피 체리(혹은 외껍질을 벗긴 커피 체리)를 캔이나 오크통 또는 비닐에 넣고 산소를 차단시켜 일정 시간 동안 발효시키는 방법이다. 지난 2019년 11월에 열린 ‘서울카페쇼’에 코스타리카 산지 조합원들이 참가해 산지의 커피 생산 현황과 가공 방식에 대한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이때 코스타리카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산소 발효 방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무산소 발효를 위해 통에 커피 체리나 점액질이 남은 파치먼트(parchment, 커피 과육의 외피만 벗기고 속껍질이 씨앗에 남아 있는 상태)를 담고 그 위에 특색 있는 향미를 지닌 다른 파치먼트나 커피 체리를 추가로 넣은 후 공기를 차단하고 24~30시간 동안 놓아두면 내부에 열에너지와 미생물이 발생해 발효가 일어난다고 한다. 발효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친 무산소 발효 커피는 추가로 담은 파치먼트 종류에 따라 계피향이 나거나 사과파이, 메이플시럽 같은 향미를 갖게 된다. 이처럼 그린 커피에 여러 향을 추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고 새로웠다. 

당시 카페쇼에서 특이한 발효 커피도 접할 수 있었는데, 루왁커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한 루왁발효커피다. 루왁커피는 사향고향이가 배설한 커피콩을 세척하여 만든 커피를 말한다.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발효균과 같은 균을 찾아내서 인위적으로 배양한 후 커피콩에 스며들게 하여 구수한 누룽지맛이 나는 루왁커피의 맛을 재현한 것이 바로 루왁발효커피다. 커피 체리가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는 동안 발효가 진행되므로 배설된 커피 역시 당연히 발효커피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 다른 발효커피로는 (재)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에서 순창 지역의 전통장류기술을 결합해 개발한 리던순창발효커피가 있다.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은 2016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 하에 발효커피 연구를 시작했다. 수백여 종의 발효미생물 중 2개의 균주(유산균, 고초균)를 선별한 후 다양한 커피 품종에 접목해 실험한 결과, 가장 활성화한 것을 최종 선정하여 상품화한 것. 구수하고 단맛이 풍부한 것이 이 발효커피의 특징이다. 

이처럼 다양한 발효 과정은 커피의 향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이유로 커피 생산국과 많은 스페셜티 커피 가공업체에서 커피의 다양한 향미를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공법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스페셜티커피 가공업체에서 더욱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노력과 연구 또한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지금껏 맛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향미를 가진 커피를 마실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커피 마니아로서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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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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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성심대학 겸임교수,젬인브라운 카페,한국커피협회 이사,<신혜경의 커피톡>칼럼 연재중, 그린커피, 커피매니아되기1, 2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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