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신맛, 단맛, 쓴맛, 탄 맛, 구수한 맛, 감칠맛 등 다양한 맛을 품고 있다. 커피가 무조건 써야 한다는 말은 옛말이고,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지고 구수하며 감칠맛까지 느껴질 때 최상의 커피로 꼽는다. 그중에서도 커피의 산미는 단맛과 함께 개운하면서도 깔끔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때론 시큼하고 강한 신맛으로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때도 있다. 마시는 사람의 선호에 따라 구수하고 쓴맛이 강하게 도는 커피를 좋아하거나 신맛이 상큼하게 도드라진 커피를 좋아하기도 한다. 물론, 커피의 신맛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의 산미를 결정하는 요소를 하나씩 살펴보고, 단맛과 조화를 이루는 적절한 신맛을 구현해 보자.

커피 체리의 숙성 정도
커피는 커피 체리, 즉 커피나무의 열매이므로, 과일과 마찬가지로 숙성 정도에 따라 향미가 달라진다. 잘 익은 것일수록 풍부한 단맛과 상큼한 신맛이 고루 느껴져 미각을 자극하고, 덜 익은 것일수록 단맛보다 시큼한 신맛과 떫은맛이 도드라져 목 넘김이 힘들고 입안에 텁텁함이 오래 남는다. 따라서 커피 수확 시기를 정할 때 체리가 얼마나 잘 익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충분히 숙성된 커피 체리로 만든 커피일수록 상큼한 신맛(Acidity)이 밑바닥에 깔려 있고 단맛이 풍부해 마지막 한 모금까지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커피가 된다. 커피전문가들은 커피의 신맛이 단맛과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보통 과일과 사탕류 등에 빗대어 말한다. 레몬, 오렌지, 사과, 복숭아, 살구, 망고, 딸기, 포도, 체리류 등의 생과일과 사탕, 캐러멜, 꿀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가공 과정 중의 발효 방법과 정도에 따라 각종 말린 과일의 맛에 비유하기도 한다.
품종과 재배 지역
커피에서 느껴지는 맛은 씨앗의 품종, 재배, 수확, 가공, 저장, 배송, 로스팅, 추출 등 전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다. 우선, 커피의 향미는 어떤 품종의 종자를 어떤 고도의 산지에서 어떻게 재배했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열대우림의 고온다습한 저지대에서 잘 자라는 로부스타 품종은 살짝 거칠고 구수하며 쓴맛이 특징이고 고지대에서 자라는 아라비카 품종은 로부스타보다 좀 더 단맛이 많고 밝은 신맛을 나타내며 후미는 깔끔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하루 종일 햇볕이 쨍쨍한 곳보다 60퍼센트 정도 그늘진 곳에서 재배한 커피가 품질이 더 좋다. 커피 재배 시 배수가 중요한 만큼 화산성 퇴적물이 있는 토양에서 재배한 커피가 더 우수하며, 해발고도가 높은 고지대에서 자란 커피는 저지대에서 재배한 커피보다 단단해 단맛이 더 많이 나고 신맛도 한층 깔끔하다. 더불어 바디감(입에 뭉클하게 느껴지는 촉감)을 내는 데 필요한 성분도 더 많이 만들어낸다. 따라서 음료에서 단맛과 신맛, 그리고 풍부한 바디감이 느껴진다면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배한 품질 좋은 커피콩으로 만든 것이라고 추측해도 된다. 특히, 깔끔한 신맛과 바디감이 모두 느껴지는 커피라면 고급 커피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가공 과정
두 번째로, 수확한 커피 체리를 가공하는 과정도 커피의 신맛에 영향을 미친다. 커피 체리에서 과육을 제거했는지에 따라 커피의 신맛과 단맛이 달리 발현되는 것이다. 과육을 벗겨내고 물에 담가 점액질(씨앗에 묻어있는 끈적한 펙틴층)을 발효시켜 제거한 후 건조 과정을 거치는 워시드 가공은 맑고 깔끔한 신맛과 단맛을 낸다.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건조하는 내추럴(자연 건조) 가공은 과일의 신맛과 단맛이 잘 드러나지만 깔끔함이 부족한 편이다. 이러한 장단점을 보완하여 다양한 가공 방법이 개발되었다. 점액질층을 얼마나 많이 남기는지 또는 발효를 어떤 방법으로 몇 차례 반복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 저장하는가에 따라 신맛을 포함한 커피의 향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로스팅 정도
세 번째로 커피의 신맛은 로스팅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커피에서 신맛을 내는 성분은 지방산과 유기산이다. 이러한 성분은 열에 약하고 쉽게 휘발되는 편이다. 로스팅을 시작하면 당류가 분해되면서 개미산과 초산을 만들다가 중간 볶음 이상(Agtron #55)으로 진행하면 신맛 성분은 점차 사라지고 쓴맛 성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항산화 작용을 하는 클로로겐산 성분도 중간 볶음에서 80퍼센트 이상 소실되고 퀸산(Quinic acid), 카페산(Caffeic acid), 페룰산(Ferulic acid)으로 전환되어 소량만 남게 된다. 만일 커피 맛에 상큼한 신맛과 단맛이 잘 살아있다면, 몸에 좋은 성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강한 볶음으로 넘어갈수록 날카로운 신맛이 도드라지는데, 때문에 강한 볶음의 커피를 잘못 추출하면 쓴맛과 함께 날카로운 신맛이 두드러져 마시기 힘든 경우가 있다. 반면, 약하게 로스팅 한 커피는 진한 농도로 마시면 타닌(Tannin)으로 인해 떫은맛과 함께 강한 신맛이 날 수 있다. 약하게 볶은 커피는 연하게 희석해서 마셔야 신맛과 떫은맛이 줄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추출 방법
마지막으로 커피의 신맛을 맛있게 살리기 위해선 커피를 어떻게 추출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용하는 원두의 볶음도와 로스팅 시간을 고려해 추출해야 하는데, 커피 사용량, 분쇄 입자의 크기, 물 온도, 사용하는 물의 양 등이 적정하지 않으면 과다 추출되어 자극적인 신맛이 날 수 있다. 좋지 않은 뒷맛 또한 길게 남는다.
신혜경
한림성심대학 겸임교수,젬인브라운 카페,한국커피협회 이사,<신혜경의 커피톡>칼럼 연재중, 그린커피, 커피매니아되기1, 2 저술.
댓글 10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