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달걀만 한 크기에 표면이 자주색 같기도, 흑색 같기도 한 과일 패션 프루트(passion fruit)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무교인 내게도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은 익숙하다. 이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으로부터 매장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칭하는 말로, 기독교 미술 용어로도 알려져 있다. 이를 묘사한 성화(聖畫)의 중심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형상이 있다.
‘passion’은 ‘열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당한 고난을 가리켜 ’수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열정과 수난이라. 조금의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의미가 한 단어를 한 몸처럼 쓴다는 게 의아하지만 그 어원에 답이 있다. ‘passion’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바로 ‘견디다’라는 뜻의 ‘patior’와 ‘고통’이라는 뜻의 ‘passio’다. 즉, 열정은 고통이면서 그 고통을 견디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passion’이 예수의 수난이며 동시에 열정일 수 있는 건, 열정이 십자가의 고통만큼이나 괴로운 것을 견뎌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혹은 수난을 겪은 예수가 그 순간까지도 인간을 열렬히 사랑했다는 의미일 수도.

패션 프루트가 ‘수난의 과일’이라 이름 지어진 건 패션 프루트의 꽃이 먼저 ‘그리스도 수난의 꽃’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시작은 1610년경이다. 남미를 여행하던 스페인 선교사가 한 꽃을 발견한다. 그는 처음 보는 그 꽃을 무슨 이유에선지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불현듯 지난날 예수의 형상이 그의 눈인지 꽃인지 모를 곳에 맺혔다. ‘T’자 형태로 나 있는 3개의 암술머리에서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가, 암술머리의 배가 나온 부분에서는 못의 머리가, 그 밑의 5개의 꽃밥에서는 십자가상에서 얻은 5개의 상처가, 꽃잎에서는 형장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예수를 거부한 베드로와 배신자 유다를 제외한 10인의 제자가 보였다. 뿐만 아니라 손바닥 형태의 잎에서는 그리스도를 찌른 창끝 혹은 박해자의 손을, 길게 말린 수염에서는 그리스도를 때린 채찍을 보았다. 선교사는 이를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렇게 그 꽃은 그리스도 수난의 꽃이라 불리게 되었다.

패션 프루트는 이후 관상용으로 넓게 재배되다가 과수로 이용 가능한 종류가 열대・아열대 지역을 중심으로 퍼졌다. 본격적으로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건 1880년경 호주를 통해 패션 프루트를 들인 하와이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 제주도에 처음 도입했다. 단, 바로 정착하지는 못하고 몇 차례 상업화에 실패하다 2010년 초반에 비로소 정착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제주와 전남, 경남 등지에서 활발하게 재배되고 있다.
패션 프루트의 시작에 특정 종교색이 짙게 깔려 있어 어떤 독자에게는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혹여나 패션 프루트와 거리를 두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혹 그런 독자가 있다면, 패션 프루트의 또 다른 이름인 ‘백향과’에 대해 덧붙이고 싶다. 백 가지 향을 가졌다고 하여 지어진 우리말 이름이다. 그 향은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가히 경이롭고, 그때 그 선교사가 아니었더라도 오늘날에 이르러 결국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을 맛을 지녔다.
전성배
안녕하세요. 전성배입니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연재자이며,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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