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례(茶禮)나 다도(茶道) 같은 형식의 어려움 때문에 차 마시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차는 편하게 일상적으로 즐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말차를 마실 때처럼 어떤 의식을 정성껏 따르는 것이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차를 우리고 마시는 과정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오직 현재에 머물기. 차를 내리는 일은 때론 명상적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수년 전 늦여름, 일본의 소도시 우지(宇治)를 여행하면서 시간의 강물이 아주 느려지는 구간을 지나는 듯한 경험을 했다. 100년이 넘은 작고 어두운 다실에서 기모노를 입은 선생님이 말차를 내리는 장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창을 통해 다다미 바닥에 드리운 햇살 한 줄기, 낡은 족자 아래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전부인 아담한 다실 안. 차 솥에서 물 끓는 소리, 긴 국자로 물을 떠 다완에 조르륵 따르는 소리, 대나무 다선으로 말차를 삭삭 휘젓는 작고 간지러운 소리가 다실을 가득 채웠고, 차 내리는 동작 하나하나에 모든 감각이 집중됐다. 예쁜 다식을 입에 물고, 다완을 들어 진한 말차를 넘겼다. 격식에 따라 인사까지 나누자 엄격한 일본의 다도 의식이 모두 끝났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모든 과정이 지나간 뒤에도 다실 밖 정원 연못의 돌 위엔 여전히 정오의 해가 반짝였다.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 후 마음이 실타래처럼 꼬였을 때나 주변이 정돈되지 못한 느낌이 들 때, 집에서도 가끔 말차를 내린다. 잠시 시간을 멈추고 조금은 경건해지기 위해 차수건을 개는 일부터 말차를 젓는 일까지 정성을 다한다. 번거로운 과정을 집중해서 마치고 나면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차를 마시고 나서 말차를 내린 ‘우주 다완’을 가만히 살펴본다. 이 다완을 내게 선물한 사람은 그냥 물만 담아 마셔도 느낌이 다를 것이라며 곱게 써 달라고 말했다. 두 손에 포근히 담기는 다완을 뜨거운 물로 데우며 잠시 바라본다. 울퉁불퉁한 도자기의 따뜻해진 감촉이 좋다.
공자는 예(禮)가 인간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다양한 일과 그로 인해 생긴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것을 정중하게 다루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자는 앉을 자리의 각도나 먹는 음식의 모양과 크기까지 세심하게 신경 쓸 만큼 일상 속 모든 상황에 의식을 만들고 이를 지켰다. 어떤 일이 닥쳐도 매 순간을 정성껏 살아내는 사람. 공자의 말 속에서 내가 바라는 이상을 본다.
아침에 일어나 차곡차곡 이불을 개고, 꼭꼭 씹어 밥을 먹고, 회사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 한 잔의 말차를 내리는 과정처럼 이 모든 일상의 순간에 정성을 담는 다면 삶은 더 천천히, 더 단단하게 흘러갈 수 있을까. 사건과 사람에 치인 마음이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다시 오는 월요일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해 봐야겠다. 유난히 피곤한 아침에도, 외로운 밤에도, 화가 나거나 우울할 때도, 비 내리는 창 밖 풍경에 감정이 널을 뛰는 날에도, 그에 어울리는 차를 마시는 의식으로 일상을 견고하게 지켜내는 나를 바라며.
인선
채널A 앵커. 바쁜 일상 속 차를 마시는 시간으로 위로를 얻습니다. 책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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