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화에서 참나무란 식물학계의 돼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참나무와 돼지를 아주 오랫동안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해왔고, 참나무와 돼지는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인간은 야생돼지를 사육해서 품종을 개량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참나무는 기껏해야 ‘절반의’ 재배에 성공했다. 참나무는 성장하고 다 자라서 있다가 죽는 데 각각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기준으로 참나무는 아주 오래 산다. 수명이 긴 참나무는 이야기와 전설에도 많이 등장하며 그 속에서 상징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을 뽐낸다.
참나무속은 약 600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주로 북반구의 온난한 지역에 분포하고 대부분이 숲을 이뤄 도토리라고 불리는 견과를 맺는다. 특수한 목적을 위해 특정 품종의 참나무를 수입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자라는 토종 참나무를 이용했다. 오크, 카르발류, 로블, 쉔, 아이헤는 모두 참나무를 칭하는 이름이다. 이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뛰어난 품질의 목재를 연상하곤 한다. 특히 서양 문화권에서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가진다.
하지만 ‘오크(Oak)’란 단어만으로는 진짜 참나무인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구전에 의하면 진짜 오크는 참나무속나무를 말한다. 그러나 오크란 단어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크(유칼립투스), 포이즌 오크(옻나무), 쉬 오크(목마황 관목), 실키 오크(우의목) 그리고 스페니시 오크(잉가 로 리나) 등 관련 없는 식물의 속과 종에도 쓰인다. 유럽 이민자들이 고향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제2의 고향에서 자라는 나무들 사이에서 닮은 점을 발견하여 이름에 ‘오크’가 들어가는 나무가 많아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가령 잎의 모양이 유사하다거나 접근성이나 속성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나무의 이름에 ‘오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그 목재로 생산한 제품의 금전적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오크’라는 단어에 속은 사람들이 높은 값을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참나무는 귀중한 목재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건축물에 참나무가 사용된다. 격식 있고 투박한 가구와 가사 용품을 만드는 데도 참나무가 사용된다. 튜더 왕조 건축물의 목재 프레임, 교회의 외팔들보 지붕, 의자, 테이블, 벤치, 침대 그리고 통에 이르는 이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참나무가 사용됐다. 무엇보다 참나무는 16세기부터 증기기관이 등장한 19세기 중반까지 배를 만드는 데 애용되었다. 참나무로 만든 배는 유럽인들을 전 세계로 실어 날랐다. 선박은 물자와 아이디어, 지혜와 무지, 질병까지도 이 문화에서 저 문화로 널리 퍼트렸다. 특히 영국 해군들이 타던 배는 해양을 지배하면서 제국의 영토 확장을 위해 ‘하드파워’를 행사했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항해에 나설 때, 영국 해군은 ‘참나무의 심장은 우리의 배’임을 노래했다. 참나무로 만든 선박은 ‘소프트 파워’도 행사했다. 멀리 떨어진 국가와의 해상무역을 통해 아이디어를 퍼트리고 사람들의 사상과 마음을 바꿨다. 헨리 8세의 군함 메리로즈호를 만드는 데 600그루의 참나무가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제독 오헤리쇼 넬슨의 군함 HMS 빅토리호에는 거의 6천 그루 이상의 나무가 사용됐고 이 중 대부분이 참나무였다. 두 함대 이외에도 참나무로 만든 군사용 그리고 상업용 소형 선박이 수백 척에 이르렀다. 선박 제작뿐만 아니라 선박을 유지 보수하는 데도 질 좋은 참나무가 필요했기 때문에 참나무의 안정적인 공급이 아주 중요했다.
참나무 목재와 가지는 숯으로 만들어 금속 세공과 요리의 연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검게 태운 참나무 조각은 식품 보존에도 중요하게 쓰인다. 참나무는 음식에 향을 낼 수 있는 중요한 향료이기도 하다. 참나무로 만든 통에 위스키를 숙성시키면 술에 은은한 참나무 향이 스며든다.

참나무 껍질은 타닌이 풍부하여 생가죽 가공업에 필수다. 특정 열대종의 나무껍질이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 참나무는 생가죽 가공업자들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껍질을 지닌 유일한 나무였다. 9세기 중반까지는 참나무 껍질의 수요가 너무 높아서 목재보다 껍질이 더 귀하게 취급되기도 했다. 몇몇 참나무종의 껍질은 코르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지중해 서부의 코르크참나무의 껍질이 가장 유명하다. 나무의 코르크 조직에는 방수와 내화 속성이 있다. 인류는 이런 속성을 이용해 와인병 마개와 내화제를 만들었으며, 참나무 코르크의 지속 가능한 생산을 위해 복잡한 관리 시스템이 진화하게 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코르크참나무 숲에서는 나무들이 수확 시기가 되면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외부로 드러나 피처럼 진한 붉은색을 띠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참나무는 여전히 서양 문화의 상징적인 나무다. 그리고 국수주의 정서와도 강하게 연관된다. 비록 인간의 환경 착취로 상당히 파괴되었지만 참나무 숲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생계 수단을 얻는 장소다. 하지만 참나무와 관련된 많은 식물, 곤충 그리고 동물의 보호 지역이 되기도 했다. 영국 도싯(Dorset)의 윈덤 숲처럼, 고립된 참나무 숲은 지형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이런 참나무 숲들은 대개 한때 더 크고 무성했던 삼림 지대에서 분리되어 살아남은 지역들이다.
이 시리즈는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돌배나무)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돌배나무에서 출판한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식물 50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해리스는 영국 옥스퍼드 크리아스트처치칼리지의 식물학과 교수이자, 옥스포드 대학교 식물표본실의 큐레이터로, 보리, 쌀, 커피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식물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파되고 인류의 삶과 문화를 변화시켜 왔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풀어낸다. (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돌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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