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후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업적은 유럽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메리카의 재발견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사이에 물자, 인적자원과 아이디어의 쌍방 거래가 성립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두 대륙의 자연 세계에도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고 기독교의 종교적 확신과 고대 그리스 · 로마 통치자들의 진실성에 대한 지식인들의 신념을 산산조각 냈으며 식문화를 바꿨다. 사람들이 식물은 신의 선물이라는 독단적인 믿음을 탈피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식물의 기원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박물학자들은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어떻게 발달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고 궁극적으로 19세기 중반에 다윈이 이룬 지적 혁명의 원재료를 제공했다.
주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인 옥수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큰돈을 쫓는 사람이나 전사, 신부, 정부 관료는 최초로 아메리카를 탐험한 부류다. 그들은 카리브 해의 섬들을 여행하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로 행진했다. 그러면서 그곳 사람들의 일상에 뿌리 내린 식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제 멸종된 부족인 타이노족은 그 식물을 ‘mahiz’라 불렀다. 이 단어는 옥수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maize’의 기원이 되었다. 중앙아메리카의 고대 마야족, 아즈텍족과 톨텍족은 지혜와 지식의 신인 케찰코아틀을 섬기며 정기적으로 신에게 토르티야를 만들어 바쳤다. 아즈텍족은 옥수수의 풍작을 위해 남성 신과 여성 신인 쇼 치필리와 치코메코아틀을 섬겼고 마야족은 윰 카악스라는 농경의 신을 섬겼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아메리카에서 적어도 자신들의 문명만큼 고도화된 문명을 만났다. 모든 고도화된 문명에는 농업 주기에 따라 들쑥날쑥한 생산량을 안정화시켜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은 거주지로 꽉 들어차 있었는데, 아즈텍족은 이 거주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위성 지역으로부터 공물을 거둬들이고 고도화된 농업 시스템을 도입했다. 얕은 호수 주변에 흙과 비료를 쌓아 만든 인공 섬인 치남파(chinampa)가 그들이 받아들인 농업 시스템 중 하나였다. 옥수수와 콩, 호박을 섞어 만든 치남파의 흙은 수십 년 동안 영양분이 풍부하고 비옥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16세기 초 아즈텍 문명이 무너지면서 파괴됐다.

현대 옥수수 종자에는 보통 식물당 한두 개의 노란색 이삭이 달린다. 하지만 고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재배했던 옥수수 이삭은 흰색부터 노란색과 빨간색을 거쳐 갈색과 검은색을 띠었고, 색깔을 비롯해 크기, 열리는 작물의 개수 등 그 종류가 아주 다양했다. 옥수수가 구세계에 처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서서히 옥수수를 식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간 영국인들이 매사추세츠 일대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이로쿼이족이 그들에게 옥수수를 재배하는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옥수수는 서서히 서구 문명에 파고들어 유럽을 변화시켰다. 옥수수의 흔적은 항상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견됐다. 그리고 옥수수의 생김새는 다른 아메리카 식물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야생에서 친척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옥수수는 아메리카의 발견 이전에 구세계에서 생겨났을까? 옥수수의 기원은 무엇일까?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옥수수의 깊은 관계와 그들이 고대부터 옥수수를 재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옥수수의 기원에 관한 질문은 아메리카의 고고학적 기록의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구세계에도 옥수수가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은 필사본과 초기 출판물에 등장하는 이름과 설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19세기 스위스 식물학자 알퐁스 드 캉돌은 옥수수의 기원이 아메리카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옥수수의 흔적이 구세계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 그리고 옥수수와 가까운 친척이라 할 만한 구세계 식물도 없다. 1492년 이전 기록물에 등장하는 옥수수로 추정되는 알맹이에 대한 언급은 위조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르바리콘, 시칠리안콘, 이집션콘 등은 옥수수를 부르는 유럽 현지 이름이다. 이 이름들은 기원보다는 어디에서 전해졌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옥수수가 1492년 이후 구세계 전역으로 널리 퍼진 곡물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옥수수가 신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 약 9천 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로 전해지고 나서 400년이 걸려 구세계 전역으로 확산됐다. 전 세계 수백만 헥타르에서 재배되고 있는 옥수수 대부분이 유전자 변형 옥수수다. 옥수수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상품이다. 무역상들의 투기로 인해 급등한 옥수수 가격이 전 세계 식품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옥수수는 동물 사료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황금빛 옥수수 이삭과 알갱이를 으깨서 구우면 콘플레이크가 만들어지고, 튀기면 팝콘이 되고, 가루로 만들면 폴렌타(polenta)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정제된 옥수수 전분과 시럽은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첨가물로 사용된다. 이것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식품들이다. 옥수수는 인간의 손에 의해 멕시코 남서부의 테우아칸 계곡의 동굴에서부터 먼 길을 이동했다.
이 시리즈는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돌배나무)에서 발췌했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돌배나무에서 출판한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식물 50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해리스는 영국 옥스퍼드 크리아스트처치칼리지의 식물학과 교수이자, 옥스포드 대학교 식물표본실의 큐레이터로, 보리, 쌀, 커피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식물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파되고 인류의 삶과 문화를 변화시켜 왔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풀어낸다. (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돌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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