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들의 명문, 위슬리가든박원순 가드너와 함께하는 세계의 정원 투어
박원순22. 08. 02 · 읽음 606

런던 남부 서리(Surry) 지방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위슬리 가든(Garden Wisley)이 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HS)에서 운영하는 다섯 개 식물원 가운데 하나로, 큐 가든(Kew Gardens) 다음으로 방문자 수가 많은 정원이다. 입구에 식물을 판매하는 숍이 있는데 다양한 정원 소재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어 전 세계 식물 마니아의 성지라 할 만하다. 주변에는 자연스럽고 완만하게 구릉진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오랫동안 크게 아름드리 나무로 자란 침엽수와 활엽수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고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빅토리아 시대였던 1878년 왕립원예협회의 조지 퍼거슨 윌슨(George Ferguson Wilson)이 24만 제곱미터의 부지를 매입하여 오크우드(Oakwood) 실험 정원을 만든 것이 이곳 위슬리 가든의 시작이었다.

위슬리 가든의 역사적인 래버러터리(Laboratory) 건물과 수련 연못. ⓒ 박원순
위슬리 가든의 역사적인 래버러터리(Laboratory) 건물과 수련 연못. ⓒ 박원순
위슬리 온실. ⓒ 박원순
위슬리 온실. ⓒ 박원순

나무들은 크든 작든 한 그루마다 자기 수관폭 지름보다 더 큰 동심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뿌리 주변부로 동그랗게 매년 잘 부숙된 퇴비를 덮어 주어 나무에게 양분을 제공하고 수분을 유지해 주는 것이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 옆 화단엔 귀한 관목류와 숙근초 품종이 수집되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케아노투스(Ceanothus thyrsiflorus var. repens)의 파란색 꽃이 신비롭게 피어 있는가 하면, 그 옆엔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란 티베트백자단(Cotoneaster conspicuus ‘Decorus’) 덤불의 하얀 꽃이 화사하다. 체크무늬 고운 결로 깎아 놓은 잔디로 가장자리를 정돈한 기다란 사각 수련 연못 끝에 자리잡은 고풍스러운 실험실 건물은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 스타일로 지어진 위슬리 가든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다. 원예와 가드닝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건물로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신기한 식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천천히 정원을 걷는 시간이 참 좋다. 가드너들은 빈 땅을 가지런히 골라 놓고 잘 재배된 화분들을 가져다가 위치를 잡아 가며 식재하고 있다. 건물 벽면에 올린 격자 시렁에도 등나무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리 잡았다. 

암석원 아래쪽으로 실개천이 흐르는 풍경. ⓒ 박원순

고산식물을 수집해 놓은 알파인 하우스(Alpine House)와 암석원(Rock Garden)에선 우리가 쉽게 가볼 수 없는 산악 지역의 진귀한 꽃들을 볼 수 있다. 열대 기후, 다습한 온대 기후, 건조 기후의 세 가지 구역으로 나뉜 위슬리 온실(The Wisley Glasshouse)에서는 겨울이 춥지 않은 지역의 풍성한 초록 식물들을 만난다. 최근엔 RHS 첼시 플라워쇼 금메달 수상자인 앤 마리 파월(Ann-Marie Powell)이 영국 시골 사유지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전통 키친(kitchen) 가든 스타일로 디자인한 세계 음식 정원(World Food Garden)이 눈에 띈다. 코로나 시국에 직접 먹거리를 재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기쁨, 아이디어를 제공함과 동시에 야생의 꽃가루 매개 곤충과 새들에게도 좋은 정원으로 이 시대에 큰 의미가 있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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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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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후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국제정원사양성과정을 이수하고 델라웨어대학교 롱우드 대학원에서 대중 원예를 전공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에버랜드 꽃축제 연출 기획자를 거쳐 현재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에 <세상을 바꾼 식물 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지은 책에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 <가드너의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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