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한 마리는 어떻게 식물 값을 올렸을까?식테크 열풍에 숨은 뜻밖의 변수
조현진22. 10. 20 · 읽음 482

알보 몬스테라의 가격이 한없이 오르기만 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몇 년 전, 이십만 원쯤 하는 알보 몬스테라를 보고 ‘와 가격이 꽤 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가격이 더 올라 결국 온라인 숍에 1,200만 원에 등록된 개체까지 등장하더군요. 인기 있는 다른 관엽 식물도 우리가 ‘화초 가격’으로 여겨온 것 이상을 지불해야 모셔 올 수 있었고요.

번식해서 늘릴 수 있는 식물 가격이 이렇게 오르고, 또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는데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우선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식물을 찾기 시작한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수요가 늘었으니 그만큼 가격이 오른 거죠. 또, 아름다운 잎의 무늬만큼 엽록소가 부족하기에 재배가 어려운 무늬종과, 증식 속도가 느린 안스리움 같은 식물은 빠르게 공급하기 어려울 거고요. 거기에 증식을 통한 금전적 이득 혹은 거래 차익을 노리는 ‘식테크’가 식물 값이 오르는 데 일조했으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벌레도 가격 상승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데요, 이 벌레는 무엇일까요?

ⓒ 조현진

바나나뿌리썩이선충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이라는 벌레입니다. 식물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과정에서 이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이 발견된다면,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수입을 금지시킵니다. 그런데 바나나뿌리선충은 식물 집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안스리움속, 필로덴드론속, 마란타속, 크테난테속, 스트로만테속, 디오스코레아속 등의 식물에서 발견되었거든요. 인기 많은 식물의 공급이 차단되었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거죠.

벌레 한두 마리 때문에 꼭 기르고 싶은 식물을 수입해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바나나뿌리썩이선충에는 절대 써서는 안 될 말일 거예요. 만약 이 벌레가 식물 틈에 숨어 들어온다면, 얼마나 큰 피해가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위험한 생물이거든요.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은 0.6밀리미터 정도의 길이의 아주 작은 끈처럼 생긴 벌레인데요, 식물의 뿌리 속을 헤집고 다니며 뿌리를 상하게 합니다. 피해를 입은 식물은 성장세가 나빠지고, 뿌리가 썩거나 괴사 하게 됩니다. 이름처럼 바나나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데요, 바나나 재배지가 이 선충에 감염되었을 경우 뿌리가 썩어버린 바나나 식물체가 통째로 쓰러져 버리곤 하며, 생산량이 30퍼센트에서 60퍼센트 정도까지 급감한다고 해요.

바나나를 재배하지 않으니 괜찮지 않냐고요?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은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식물종이 400여 종이나 되는데요, 이들 중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관엽 식물뿐만 아니라 중요한 먹거리인 강낭콩, 수박, 토마토, 고추, 호박, 차나무, 생강, 옥수수, 당근, 귤, 근대, 배나무 등이 포함되어 있어요.

프랑스 포도밭에서

와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 그런데 프랑스는 해충 하나로 인해 포도밭과 와인 사업에 위기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신대륙이 발견된 후, 유럽 와이너리에서는 재료로 시험하기 위해 새로 발견된 미국의 포도나무를 본토로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검역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1858년, 미국포도나무에 숨은 포도나무뿌리진디가 프랑스로 유입된 것이지요.

포도나무뿌리진디는 포도나무의 뿌리와 잎을 먹으며 뿌리에서의 양분과 물의 이동을 막고, 곰팡이 감염을 유발해 결국 시들어 죽게 만드는 치명적인 해충입니다. 유럽 본토에 없던 이 진디는 순식간에 수많은 포도밭으로 퍼졌고, 결국 1870년 중반까지 프랑스 포도나무 40퍼센트 이상이 황폐화되고 맙니다. 재료인 포도가 없어 일거리를 잃은 와인 제조자들은 이 벌레가 창궐하지 않은 남미, 호주 등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또 남은 포도밭도 피해를 막기 위해서 기르던 포도나무를 포기하고, 포도나무뿌리진디에 내성이 있는 미국포도나무의 뿌리에 와인용 포도 줄기를 접붙인 것으로 모두 바꿔야만 했다고 해요.

포도나무뿌리진디의 방제법은 개발되지 못했기에, 지금까지도 유럽에서는 미국포도나무의 뿌리에 유럽 종의 줄기를 붙여 기릅니다. 이제 재래종이 스스로 뿌리내릴 수 없게 된 유럽의 포도밭을 생각해 보면, 관엽 식물 가격을 올린 벌레가 새삼 무서워집니다. 저도 마음에 담아둔 수입 금지 식물이 하나 있는데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내에서 많이 증식되길, 그래서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천천히, 안전하게요.

0
조현진
팔로워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