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수목원. 식물을 보고 있으려면 사람들의 말이 들립니다. “이 꽃 이름은 알아?” “음, 아마 민들레가 아닐까?” 눈앞에 꽃을 두고 두런거리는 소리에, 남몰래 웃음을 짓습니다. “그 식물은 민들레가 아니고요, 좀씀바귀라는 식물입니다. 국화과에 들며 노랗고 작은 꽃을 피운다는 점은 같지만, 잎사귀가 작고 둥글며 꽃의 형태가 다릅니다”라고 정정하는 제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목원을 산책할 때에는 정확한 이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보다는 지금 피는 꽃들을 보고, 나뭇잎 소리를 듣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것. 그리고 지나는 우리의 계절을 잠시 붙잡아 두는 일에 충실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이번 꼭지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곤 하는 식물을 알아볼까 해요.
귀여운 노란 꽃을 보고 민들레라고 부르는 것처럼, 하얗고 동그란 꽃이 조르르 피는 식물을 두고 은방울꽃이라고 부르곤 하지요. 그림 속 세 가지 식물처럼요. 그렇지만 이 셋 중 하나만이 진짜 은방울꽃이고, 나머지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은방울꽃은 무엇일까요?

1번 은방울꽃
그림 속 식물들이 모두 은방울꽃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진짜 은방울꽃은 1번입니다. 같이 두고 보니, 셋 중 가장 은방울에 가까운 동그란 꽃을 피우지 않나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 식물은 제 이름이 불리기는커녕,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키가 한 뼘에서 두 뼘 정도로 무척 작은 데다가, 잎사귀 아래에서 숨듯이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꽃 크기도 작고요.
진짜 은방울꽃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은방울꽃은 다행히도 잎사귀가 특색이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는, 깨끗하고 단정한 잎사귀 두 장을 ‘브이’ 자로 내거든요. 이 모양새를 기억해 두었다가 개화기인 4월에 이 잎사귀를 찾아 사이사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되어요. 금속성인 은보다는 보드라운 진주에 가깝고 그윽한 향기가 나는 진짜 ‘은방울꽃’을 꼭 만나 보길 바랍니다.
은방울꽃이라고 불리는 식물들
2번은 쪽동백나무입니다. 울창한 숲 하부에 흔히 자라고, 또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이따금 심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이에요. 아마 아파트 단지의 정원이나 공원에서 만나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쪽동백나무’라는 이름, 조금 낯설지요. 우리가 ‘은방울꽃’이라고 무심코 부를 만큼 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왜 이름은 뜬금없이 ‘쪽동백’일까요? 오래전에는 이 쪽동백나무의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썼습니다. 마치 동백기름처럼요. 그런데 동백열매에 비해 쪽동백나무의 열매는 작아서 ‘쪽동백나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3번은 실유카라는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곳곳에 심어 가꾸는 늘푸른꽃나무예요. 성인 키에 이르는 큰 꽃차례와 파인애플처럼 뾰족뾰족하게 모인 잎사귀의 모습이 이색적이어서, 분명히 어디선가 보신 기억이 있을 듯합니다. 이 식물은 ‘유카’라는 종과 꼭 닮았지만, 잎사귀 가장자리에 실 모양 섬유가 달리기에 ‘실유카’라고 부릅니다.
은방울꽃이 아니라, 쪽동백나무 혹은 실유카
오늘은 우리가 무심코 은방울꽃이라고 부르는 식물들이 사실은 쪽동백나무 혹은 실유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저 하얗고 둥근 꽃을 보고 은방울꽃이 아닐까 가볍게 생각해 보는, 기분 좋은 산책을 제가 망쳐 놓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논문을 쓰는 것도, 정원을 만들기 위해 식물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니 쪽동백나무, 혹은 실유카를 은방울꽃이라고 불러도, 뭐, 상관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진짜 은방울꽃을 만나보시길, 그리고 은방울처럼 생긴 쪽동백나무 그리고 실유카라는 이름도 기억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봅니다. 조용한 수목원에서 식물을 보는 마음으로.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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