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숲을 이루는 나무라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인간의 역사는 사람의 눈으로 과거를 기록한 것인데, 그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나무라고 생각하면 세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 생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은 그의 저서 <녹색 세계사>에서 역사를 자연환경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인간 중심으로 보는 대신 자연환경 입장에서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다른 세계관을 제시했습니다. 나무 입장으로 사람을 보면 우리가 마냥 반가운 존재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숲에 드나들면서 발자국을 남깁니다. 사람이 숲에서 나무를 자르고, 불태우고, 개간하고, 집을 짓고, 길을 내고, 광물을 채굴하면서 남긴 부담이 숲 발자국(forest footprint)이죠. 숲 발자국이 많아지고 산의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산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피해를 되돌려줍니다. 결국 우리가 자연재해라고 부르는 홍수, 산사태, 산불 등은 사실 사람이 일으킨 인재(人災)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숲은 백성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대상이었고, 전쟁으로 파괴되었죠.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인구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개발로 인해 우리 숲은 계속되는 수난에 시달렸어요.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보는 숲은 황폐했던 산하를 사람의 피와 땀으로 일군 자연성이 낮은 이차림과 일부 자연림이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성공적인 조림 사례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죠.
숲은 지구의 기후 시스템과 생태계를 유지해 주기 때문에 지구의 허파라고도 부릅니다. 숲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만들어 주고, 물을 깨끗하게 걸러주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되어 생태계를 다양하게 만들어주죠. 유엔(UN)에 따르면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숲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24억 명이 먹을 것을 준비하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목재와 숯을 사용합니다. 식량농업기구(FAO)는 숲이 벌채되고, 토지가 훼손되면서 인류 32억 명의 복지가 영향을 받으며, 연간 세계총생산(GDP)의 10퍼센트 이상에 이르는 손실이 생태계에서 발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숲은 세계 생물자원의 8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생물 자원 저장 창고이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자원의 곳간입니다. 숲은 종이나 건축자재에 쓰이는 나무를 내어주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를 막는 등 여러 혜택을 주는데, 이를 ‘산림생산성’이라 말합니다. 숲에 자라는 나무의 종수가 10퍼센트 줄어들면 숲의 생산성도 평균 2∼3퍼센트 줄었다고 하니 생물 다양성은 숲의 생산성에도 중요하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에 서식하는 생물종 가운데 매년 2만 5천∼5만여 종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후변화, 환경오염과 함께 인구 증가, 도시화와 산업의 발달이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전자, 생물종, 생태계의 다양성을 포함하는 생물 다양성이 무너지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까지 망가뜨리게 됩니다. 숲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이죠.
공우석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공생을 바라며 한국의 숲을 누비는 지리학자.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의 다양성과 기후, 인간 등 환경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고, 기후 변화가 고산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또한,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 생물 멸종 위기 등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숲이 사라질 때> <기후위기 더 늦기 전에, 더 멀어지기 전에> <바늘잎나무 숲을 거닐며>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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