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어떻게 지금처럼 다양한 모양과 향을 가진 꽃을 피우게 되었을까요? 식물의 진화 과정은 다양한 곤충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원리가 바로 공진화(共進化)입니다.
지구상에 등장한 식물은 처음에는 자신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번성해 갔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환경에서 짝짓기를 통해 유전자를 다양하게 만드는 식물이 살아남기 유리하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바람이 그 역할을 대신하다가 드디어 꽃이 탄생했고, 여기에 다양한 곤충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터득했죠.
처음에는 암수술만 있었습니다. 이 암수술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곤충이 착륙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 바로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는 꽃입니다. 꽃을 보고 날아온 곤충은, 가까이 오면 착륙을 안내하는 자외선 지시 무늬를 볼 수가 있지요. 한마디로 꽃은 세상 온 곤충을 끌어들이는 만남의 장소인 셈입니다. 다양한 식물을 키우면 꽃이 필 때마다 자연히 다양한 곤충이 몰려듭니다.
관상 목적으로 개량한 식물은 곤충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홑꽃을 겹꽃으로 개량하는 경우 대부분 수술을 변형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생식 기관이 퇴화되어 곤충을 유혹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지요.
식물마다 좋아하는 곤충이 다릅니다. 이는 꽃이 피는 시기, 곤충 입의 구조와 크기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털부처꽃을 키울 때 특이한 띠호박벌이 떼로 날아와 놀란 적이 있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부처꽃에는 노랑나비, 흰나비, 큰주홍나비, 박각시, 부전나비, 팔랑나비류 등 다양한 곤충이 날아옵니다. 이를 노리는 사마귀가 꽃 뒤편에 붙어 있기도 해요. 부처꽃 끝단은 모양이 뾰쪽해 잠자리가 앉기 좋아합니다. 밑에서 참개구리가 이를 노리고 점프할 기회를 지켜봅니다. 식물은 다양한 생물이 만나는 장이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식물을 키우면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에게 도움을 주는 셈입니다.
해안가 산책을 하다 화단에 소복이 난 초피나무 모종을 발견하고는 여러 그루를 뽑아왔습니다. 아마도 횟집 양념으로 쓰고 버린 씨앗에서 싹이 튼 모양입니다. 그 나무에 호랑나비가 언제 알을 낳았는지 애벌레가 자라기도 합니다. 간간이 잎을 쓰다듬어 향기를 맡는데, 의외로 좋은 토종 허브입니다.
호랑나비는 운향과 식물을 좋아하는지라 황벽나무, 제피나무, 산초나무, 금귤 등을 키우면 종종 호랑나비가 찾아와서 알을 낳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지, 어미 나비는 편식쟁이 애벌레가 좋아하는 바로 그 식물을 알아보고 거기에 알을 낳는 거지요.

새벽에 옥상 정원에 물을 주러 올라가면 벌 대여섯 마리가 날아옵니다.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요즘, 참외 꽃을 수정하러 와준 귀한 일꾼입니다. 제가 할 일을 대신해 주고, 알아서 꽃가루를 보상으로 가져갑니다. 저는 커가는 참외를 잘 키워 먹기만 하면 됩니다.
지구상에 벌이 사라지면 몇 년 안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벌이 있는지라 그런 일이 당장 닥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만. 수많은 작은 꽃을 수정시키는 일을 누가 대신해 줄까 생각해 보면, 벌은 너무도 고마운 생명체입니다. 반대로 저도 다양한 식물을 키우면서 새벽 일찍 날아오는 벌들을 도와주는 셈이겠죠. 인류가 지구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생명체들과 공진화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식물은 만물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지구의 주인이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에 식물을 풍성하게 키우고 꽃 피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손님들이 찾아오는지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동고
포항 기청산식물원에서 탐방객 식물 교육을 담당했다. 일간지에 신문 인문학 글을 연재했고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독일 숲 교육, 마을 교육 공동체 등을 취재했다. 에세이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울산광역시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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