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시나무, 흔하지 않은 참나무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 박사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멸종위기 식물 이야기
hyewoo22. 11. 18 · 읽음 215

참나무는 흔하지만 진짜 참나무는 없다

우리에게 참나무라는 이름은 익숙합니다. 흔히 도토리를 가진 나무로 알고 있지요. 그런데 정작 참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참나무는 참나무속에 속하는 모든 종을 말합니다.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등 여러 종이 있지만 정작 ‘참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종은 없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것에 ‘참’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혹 참나무 속 나무들을 공평하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에 참나무라는 이름을 한 종에 붙이진 않은 걸까요? 그런 것이라면 그 이유가 참 따뜻합니다.

가시나무류 도토리. ⓒ 신혜우

전국에서 참나무는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중부 이북 지역에는 낙엽성 참나무가 흔합니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이지요. 중부 이북 지역에서 도토리를 주웠다면 이런 낙엽성 참나무류 중 한 종의 열매일 겁니다. 반면 남쪽으로 내려가면 늘 푸른 잎을 가지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가시나무, 참가시나무,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붉가시나무지요. 가시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줄기에 가시가 많거나, 가지가 가시처럼 뾰족하진 않습니다. 위쪽 지방 참나무들처럼 도토리를 맺지요. 다른 점이라면 동백나무 잎처럼 도톰하고 반짝거리는 잎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남쪽 참나무는 가을이 와도 잎은 떨어지지 않고 산을 푸르게 장식합니다. 

개가시나무. ⓒ KENPEI

잎사귀를 뒤집으며

참나무는 그 이름이 익숙하듯 대부분 우리 곁에 늘 있는 흔한 나무입니다. 그러나 한 참나무는 멸종위기 2급 식물입니다. 남쪽에 사는 참나무 중 하나인 개가시나무죠. 개가시나무를 다른 가시나무들과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잎을 뒤집어보는 것입니다. 잎의 뒷면에 황갈색 털이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가시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없거나 연한 녹색, 백색을 띱니다. 

저는 동료와 함께 개가시나무가 사는 제주도의 한 곶자왈에 갔습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곶자왈 숲 속을 걸으며 가시나무를 관찰했습니다. 잎을 뒤집을 때마다 그 나무가 개가시나무이길 바라면서요. 반나절이 지났지만 우리는 개가시나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멸종위기 2급이니 짐작했던 일이었죠. 반면 다른 가시나무들은 참 많기도 했습니다. 남쪽에서 숲을 이루는 주요 나무들이라 주변은 온통 가시나무들이었죠. 그 많은 나무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정말 고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지나가면서 일단 나무마다 잎을 하나씩 뜯어 모았습니다. 한 번에 잎을 뒤집어 갈색 털이 있는지 확인했죠. 그러나 갈색 털이 있는 잎사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불규칙한 바위가 많아 지형이 험한 곶자왈 숲을 오랜 시간 걷느라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곶자왈을 빠져나가기로 했지요.

개가시나무 .ⓒ Shihchuan(石川)

어딘가에 있을 너

터벅터벅 돌아 나오는 길에도 가시나무가 보이면 잎을 한 장씩 모았습니다. 숲에서 내내 하다 보니 손에 붙어버린 버릇이었죠. 숲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쯤 손에 가득한 잎사귀를 뒤집어 흩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갈색 털이 빽빽한 한 장의 잎이 섞여 있었습니다. 개가시나무였죠. 불행히도 그 잎은 어느 나무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개가시나무를 어렵게 만났지만 놓쳐버리고만 안타깝고 황당한 경험이었죠. 정말 짧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래도 곶자왈 숲 속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건 확인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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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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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식물형태학적 분류 및 계통 진화와 같은 전통적인 연구부터 식물 DNA바코딩과 식물 게놈 연구와 같은 최신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식물생태학적 분야로 연구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는 신진연구자이다.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2013, 2014, 2018, 2022년 참여, 모두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최고전시상 트로피와 심사위원스페셜 트로피를 수상하였다. 식물분류학과 생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를 융합한 국내외 전시, 식물상담소, 강연, 어린이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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