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처럼 포근한 섬, 볼음도수령 800년의 이산가족 은행나무가 사는 섬
강제윤22. 11. 16 · 읽음 80

볼음도는 북방한계선(NLL) 안에 있는 섬이다. 그래서 선착장 입구에는 군인들이 나와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방문 목적을 물은 뒤 방문증을 나눠준다.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볼음도는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선착장에서 가까운 큰 마을이 당하촌이다. 마을 앞에 마을의 신전인 당산이 있다. 그 당산 아래 있다 해서 당하촌이다. 또 다른 마을은 800살 은행나무 어르신이 굽어살피고 있는 작은 마을, 내촌이다. 은행나무가 있어서 은행나무골, 은행촌이라고도 부른다. 

섬은 조선시대 교동군에 속했다가 1914년 경기도 강화군에,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에 편입됐다. 섬을 둘러싸고 평양금이산, 요옥산, 앞남산, 신선봉 등이 있고 그 안에 마을과 농토가 있다. 이 섬 역시 서해바다 조기의 신인 임경업 장군의 전설이 전해진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힌 왕자를 구하러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피해 볼음도에 들어왔는데 마침 보름달이 떠 있어서 볼음도라 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 근처 바다가 연평바다처럼 조기어장이었던 데서 비롯된 전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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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NLL 안이라 어로 행위가 자유롭지 못해 어로를 하는 가구는 적다. 큰 배 1척, 작은 배 2척뿐이다. 그래서 주민 다수는 배 없이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에 건강망을 설치해 밴댕이 같은 물고기를 잡는다. 또 갯벌에서는 상합(백합), 가무락(모시조개), 소라 등을 잡아 소득을 올린다. 이 갯벌은 천연기념물 419호인 저어새 번식지이기도 하다. 저어새 보호 때문에 주민과 정부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볼음도 선착장 대합실 옆에는 확 들어오는 입간판이 하나 서 있다. 저어새가 들려주는 볼음도 이야기. 볼음도의 역사와 전설, 생태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설명해 주고 있는데 쉽고 위트 있어 간판 앞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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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지만 볼음도의 주업은 농사다. 갯벌을 간척해 논을 만든 까닭에 한 가구당 평균 경작 면적은 만 평이 넘는다. 섬은 오랜 옛날부터 모래밭에 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했다. 그래서 섬 안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이 방풍림과 산들이 바닷바람을 막아주어 섬은 분지처럼 아늑하고 벼는 해풍의 피해를 입지 않고 튼튼하게 자란다. 섬에는 강화도의 트레일인 나들길 13구간이 13키로미터 남짓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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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을을 지나고 폐교를 지나 내촌에 이르면 바닷가 저수지 옆에 은행나무 어르신이 우뚝 서 계신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 줄기둘레 8미터, 밑동둘레 9.7미터, 키 25미터로, 천연기념물 제304호다. 이 나무는 원래 북녘 땅에서 살았다. 고려시대 지금의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운동장 자리에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살았는데 어느 여름 홍수에 한 그루가 뿌리 뽑혀 볼음도 바다로 떠내려온 것을 주민들이 건져내 다시 심었다고 전해진다. 볼음도에서 연안까지는 불과 8키로미터. 볼음도 주민들은 호남리 주민들에게 연락해 그 나무가 호남리에서 떠내려온 숫나무인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매년 정월 초 풍어제를 지낼 때면 볼음도와 호남리 어부들은 서로 날짜를 맞춰 생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헤어진 은행나무 부부의 슬픔을 달래준 것이다. 하지만 은행나무 생일상은 한국전쟁 이후 호남리가 북한 땅이 되면서 끊기고 말았다. 

그 후 볼음도의 숫나무는 시름시름 앓더니 점차 말라가기 시작했다. 섬 주민들은 연안에 사는 암나무의 안부를 알 길이 없어지자 숫나무가 죽어가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은행나무 근처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해수가 차단되자 볼음도 은행나무는 푸르름을 되찾았다. 들리는 풍문에는 북한의 암나무도 합동 풍어제가 중단된 후 시름시름 앓았는데 근래 호남중학교 교직원들의 보살핌을 받아 다시 생기를 찾았다고 한다. 호남리 은행나무도 북한의 천연기념물 165호로 보호받고 있다. 볼음도에는 경운기를 타고 가도 30분 넘게 가야 할 정도로 광대한 갯벌이 있다. 이 갯벌에서는 백합조개와 모시조개 등이 산다. 끄레라는 전통 도구로 백합잡이를 체험할 수도 있다.

가는 방법 : 강화 외포항에서 하루에 두 번(오전 9시 40분, 오후 3시 10분) 볼음도로 출항하는 배가 있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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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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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은 시인이며 섬연구자다. 사단법인섬연구소 소장,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국립 한국섬진흥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섬을 걷다>, <당신에게 섬>, <섬 택리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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