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최남단의 섬, 보령 외연도2000년 전 중국의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섬
강제윤23. 08. 19 · 읽음 73

2000년 전, 중국의 장군과 군사 500명이 망명해 살던 한국의 섬. 그 장군을 여전히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 충남 보령의 외연도 이야기다.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53킬로미터 떨어진 외연도는 충남 보령시 70여 개의 섬 중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더 가면 중국이다. 외연도는 청섬, 작은청섬, 수수떡섬, 밧갱이, 느래 등 10여 개의 들과 무리를 이루고 있다.  

내내 바다를 보면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은 외연도 여행의 백미다. 외연도 둘레길은 망재산 등산로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초입은 조금 가파르지만 산 정상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망재산 뒤안을 돌아 고래의 성기처럼 불쑥 솟아 있는 ‘고래조지’ 길을 빠져나오면 길은 당산으로 이어진다. 당산은 마을 쪽 초등학교 옆길로 가면 더 쉽게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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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헥타르 규모의 아담한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등 고목이 내내 신령한 기운을 뿜어낸다. 나무로 연료를 쓰던 시절 섬은 나무가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나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산이 지닌 신성함 때문이었다. 당산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경외의 대상이었다. 추위에 떨며 잘지 언정 당산의 나무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당산의 수호신이 바로 2000년 전에 살았던 중국의 전횡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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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횡은 진나라 멸망 뒤 제나라를 세워 항우, 유방과 맞섰던 제나라 왕 전영의 동생이자 잠깐 제나라 왕이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결국 전횡은 천하통일을 이룬 한나라 황제 유방에 패배해 오호도(嗚呼島)란 섬으로 망명했으나 유방의 소환을 받고 한나라 수도 낙양으로 가던 중 유방에게 고개 숙일 수 없다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전횡의 자결 소식을 듣고 그의 부하들 500명 또한 뒤따라 자결했다고 전한다. 전횡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된 뒤 천고의 미담이 됐다. 그래서 전횡은 충절의 상징으로, 그의 부하들은 의리의 상징으로 추앙받아왔다. 전횡의 부하들이 ‘오호(嗚呼)!’ 탄식을 하며 자결했다 해서 전횡이 머물던 섬은 ‘오호도’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외연도에는 ‘오호도가 바로 외연도였다’는 전설이 내려져 왔다. 그래서 전횡 장군의 사당이 있다. 외연도 부근의 섬 어청도나 녹도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전횡은 쇠부채를 이용해 세곡선을 섬으로 끌어들여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준 뒤 세곡선을 불살라 버렸다 한다. 중국의 지모시(即墨市)에도 전횡의 전설이 깃든 ‘전횡도(田横岛)’라는 섬이 있다. 칭다오(青岛)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황해(黄海)의 섬이다. 전횡도에는 전횡 일가를 배향한 제왕전(齊王殿)까지 있다. 그렇다면 결국 외연도, 어청도, 녹도, 전횡도가 다 오호도인 것이다. 황해의 섬들은 모두 전횡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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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횡장군 사당은 마을 신전인 당집이다. 이 당집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2월 15일 당제를 모신다. 이곳에서 당제에 쓸 소를 직접 잡는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 중 아직까지 당산에 올라 직접 소를 잡아 바치는 곳은 아마도 외연도가 유일할 것이다. 그 정도로 당에 대한 신앙심이 깊다는 뜻이다.

이 당산에는 동백나무 연리지가 있었다. 일명 사랑나무. 하지만 2010년 태풍 곤파스에 일격을 당한 뒤 나무는 고사하고 말았다. 당산을 빠져나오면 길은 큰명금, 작은명금, 돌삭금해변으로 이어지다 봉화산 약수터 부근에서 둘레길과 등산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숲속에는 해막이 있던 자리다. 해막이란 일종의 피난처로, 외연도만이 아니라 많은 섬과 해안가 지역에 있던 풍습이다. 과거 섬이나 바닷가 지방에서는 여성과 관련된 금기가 유난히 많았다. 해막 또한 이런 여성 금기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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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에서는 마을 대동제인 당제(풍어제) 때가 되면 임산부를 당산 신의 관할권 밖인 이 해막으로 피신시켰다. 피부정을 방지한다는 이유였다. 출산이 임박한 경우 출산까지 가능하도록 시설을 만들었던 까닭에 피막 혹은 산막이라 부르기도 했다. 풍어제 기간에는 마을 사람 누구도 이 해막에 갈 수 없었다. 철저히 고립된 공간 그래서 임산부에게 시급히 전해야 할 소식이라도 있으면 멀리서 소리를 질러 전달했다. 피막에는 임산부를 돌봐줄 산파도 함께 따라갔다. 출산을 대비해서 노련한 산파가 동행해 거주했다. 산파는 해막할매라 불렸고 해막에서 출생한 아이는 ‘해막동이’라 했다. 임산부가 피하지 않아 그해 마을에 재앙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옴팡 뒤집어쓰게 되기 때문에 이 금기는 철저히 지켜졌다.

가는 방법 : 대천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외연도로 출항하는 배를 타면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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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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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은 시인이며 섬연구자다. 사단법인섬연구소 소장,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국립 한국섬진흥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섬을 걷다>, <당신에게 섬>, <섬 택리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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