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의 섬 소안도(所安島)는 그 이름처럼 편안한 느낌이 드는 섬이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라 불릴 만큼 그 역사는 결코 녹록지 않다. 한 시절 남해의 모스크바라 불리던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함경도의 북청, 부산의 동래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의 메카였다. 1920년대에는 소안도 주민 6,000여 명 중 800명 이상이 불령선인(不逞鮮人, 불량한 조선 사람)으로 낙인 찍혀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독립운동을 하다 형무소에 끌려간 주민이 있으면 남은 사람은 그들을 생각하며 한겨울 추위에도 불을 때지 않고 잘 정도로 의리가 깊었던 섬이다.

소안항에 내리면 섬의 역사를 알리는 비석 하나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항일 성지 소안도’라고 적힌 비석에서 어떤 긍지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작은 섬이지만 건국훈장 수상자 20명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89명을 배출한 항일의 땅이니 당연한 일이다. 가학리에는 소안 항일독립운동 기념탑과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소안도 항일 해방운동의 뿌리는 갑오년의 동학혁명에서 시작된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동학의 접주 나성대 장군이 동학군을 이끌고 소안도로 들어와 군사훈련을 시켰다. 소안도 출신 이준화, 이순보, 이강락 등이 동학군에 합류했다. 동학군의 군사훈련 때 소안도 주민은 군사들의 식량을 조달했다. 혁명 실패 후 김옥균을 살해했던 홍종우의 밀고로 이순보, 이강락 등은 청산도로 끌려가 관군의 손에 총살당했다.
살아남은 이준화는 동학군과 함께 도피한 뒤 의병을 이끌고 소안도 인근의 자지도(현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간수들을 처단했다. 당사도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09년 일제에 의해서였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조선 침략의 앞길을 밝힌다는 의미의 봉화대였다. 자지도 의거가 일어난 것은 등대가 세워진 바로 그해. 이준화 선생을 비롯한 의병 6명은 1909년 1월 일제 침략의 전진 기지로 자지도 등대가 세워진 것에 격분하고는 같은 해 2월 24일 자지도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등대 간수 4명을 사살하고 등대의 주요 시설물을 파괴했다.

동학의 영향과 함께 소안도 항일운동의 또 다른 기반은 중화학원과 사립소안학교였다. 중화학원은 1913년 송내호, 김경천 등이 설립했는데 사립소안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소안도 주민들은 1905년 왕실 소속의 궁납전(宮納田)이던 소안도의 토지를 강탈해 사유화한 사도세자의 5세손이자 친일 매국노인 이기용 자작으로부터 토지를 되찾기 위해 13년 동안이나 법정 투쟁을 벌였다. 1922년 2월, 토지를 되찾은 소안도 사람들은 성금을 모아 사립소안학교를 세웠다. 당시 소안학교는 인근의 노화, 보길, 청산은 물론이고 해남, 제주도에서까지 유학생이 몰려올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소안도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 옆에 사립소안학교가 복원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소안도의 항일운동은 송내호, 김경천, 정남국 등에 의해 주도됐는데 이들이 조직한 수의위친계, 배달청년회, 소안노농대성회, 마르크스주의 사상단체 살자회, 일심단 등의 항일운동 단체는 소안도와 완도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후일 송내호는 서울청년회와 조선민흥회, 신간회 등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고 정남국은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조선인노동총동맹 위원장을 지냈다.

소안도의 옛이름은 달목도(達木島)다. 노화도, 보길도, 횡간도, 당사도 등의 섬과 함께 소안군도(所安群島)를 이룬다. 면적 23.16제곱 킬로미터, 해안선길이 42킬로미터, 최고봉은 가학산(359m)이고 대봉산(338m), 부흥산(228m), 아부산(110m) 등 산지가 섬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초·중·고등학교가 하나씩 있다. 동쪽에는 청산도, 대모도 소모도가 서쪽에는 보길도, 노화도, 북쪽에 완도가 있고 남쪽에는 당사도와 여서도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인 미라리 상록수림(339호)과 맹선리 상록수림(340호) 등 아름다운 숲이 많다. 미라리 해수욕장, 과목해수욕장, 소강나루해수욕장, 진산리해수욕장, 부상리해수욕장 등의 해변이 있는데 미라리 해변과 상록수림을 으뜸으로 꼽는다.

다도해 섬들과 제주도 한라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가학산을 오르는 것도 좋고 대봉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소안도에도 해녀가 있어 운 좋으면 바로 물질해서 건져온 전복과 해삼, 소라, 성게알을 맛볼 수도 있다. 물론 전복 양식을 많이 하는 섬이니 양식 전복은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양식 전복도 전복의 먹이는 똑같은 해초니 양식이라 해서 맛이 뒤지지는 않는다. 현지에서 맛보는 전복은 정말 달다.
가는 방법 : 전남 완도군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면 1시간만에 소안도에 닿는다.
강제윤
강제윤은 시인이며 섬연구자다. 사단법인섬연구소 소장,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국립 한국섬진흥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섬을 걷다>, <당신에게 섬>, <섬 택리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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