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매물도는 한국인이 꼭 가보고 싶은 섬 1위에 뽑힌 소매물도의 어미 섬이지만, 늘 소매물도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더 고적하고 평화로운 섬. 게다가 소매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대매물도다. 대매물도에서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의 풍경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 소매물도에서 나와야 소매물도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대매물도 폐교 운동장에는 남태평양 바다가 훤히 보이는 캠핑장도 있어 금상첨화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 속하는 대매물도에는 대항, 당금 두 개의 마을 있다. 면적 1.4제곱킬로미터, 해안선 길이 5.5킬로미터, 최고점은 장군봉(210m)이다. 통영에서 직선거리로 27킬로미터.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일부다. 대항, 당금 두 개의 마을 외에도 본래는 꼬돌개라는 마을이 하나 더 있었지만 조선 시대 말 괴질이 유행한 이후 폐촌되고 말았다. 섬은 어선업과 해녀들의 물질로 살아간다. 대매물도에는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5.2킬로미터의 트레일 해품길이 있다. 당금마을 폐교 캠핑장에서 해품길이 시작된다. 이 길에서는 한없이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은 더없이 편안하고 한가롭다. 숲길을 지나면 환상처럼 초지가 나타난다. 섬에 넓은 초지가 있는 것은 과거 인구가 많을 때 화목으로 베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비탈까지 개간에서 일구던 밭을 묵혀 두니 그 또한 초지가 되었다. 근래에는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돼 베어진 소나무들이 많아 초지는 더 넓어졌다. 그로 인해 시야도 확 트였다.
섬에서 만나는 녹색의 드넓은 초지는 이방의 감성을 자극한다. 섬은 그래서 여권 없는 해외여행이 된다. 길은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대체로 평탄하다. 섬의 뒤 안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가파른 산비탈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난 잣밤나무나 동백나무 같은 상록수들은 몽실몽실 피어난 초록의 꽃 같다. 그 위로 쏟아지는 남국의 태양빛이 눈부시다. 길을 걷다 보니 산의 고갯마루까지도 전에는 온통 밭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산정의 돌담들은 밭의 흔적이다. 바람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섬에서는 밭에도 돌담을 쌓았다.

장군봉 전망대에 서면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 수 있다. 소매물도 산정에서는 등대섬만 보이지만 장군봉에서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함께 보인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이는 법.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조망하기에 장군봉보다 더 좋은 곳은 더 없다. 장군봉 전망대 옆에는 바위굴이 있다. 이 굴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포진지로 만들어졌다. 1945년 3월, 진해 일본군 통제부에서 대한해협 방어를 위해 대매물도에 포진지를 구축했다. 포진지 공사에는 충청도에서 끌려온 광부들과 매물도의 당금, 대항, 소매물도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 끌려온 사람들은 스스로 식량을 마련해와 바위굴을 뚫고 '방카'(대피소)를 만들었고 포진지를 구축하느라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포진지는 무용하게 됐고 후일 한국 해군이 잠시 진지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지금 장군봉에는 해군도 떠나고 통신회사 기지국이 들어서 있다. 장군봉에서 섬 뒷길을 따라 꼬돌개로 넘어간다. 소매물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꼬돌개는 대매물도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지만 섬사람들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10년경 첫 입주한 이주민들이 ‘괴질(콜레라)로 전부 꼬돌아졌다(쓰러졌다)’ 해서 생긴 지명이 꼬돌개다.

대매물도 해녀들도 전복, 소라, 성게, 석화 등 해산물을 채취한다. 대매물도에는 1925년경부터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오기 시작했다. 1930년부터는 제주의 고운식, 오백룡 등이 해녀를 싣고 와 본격적으로 해녀선을 운영하며 해산물을 채취했다. 이 나라 바다 구석구석 제주 해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당시에는 해산물을 채취하면 마을과 해녀가 반분했다. 지금 남은 해녀들은 그때 그 제주 해녀의 후예들이다. 오늘 나그네는 선창가에 앉아 나이 든 해녀가 막 잡아 온 손바닥만 한 석화에 술잔을 기울인다. 한 개가 한 접시나 되는 석화의 맛은 마치 진짜 진한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고소하다. 괜히 굴을 바다의 우유라 한 것이 아니구나! 이 또한 섬과 바다가 주는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가는 방법 : 경남 통영시의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는 1시간 30분 정도, 거제시 저구항에서 배를 타면 1시간이 걸린다.
강제윤
강제윤은 시인이며 섬연구자다. 사단법인섬연구소 소장,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국립 한국섬진흥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섬을 걷다>, <당신에게 섬>, <섬 택리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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