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은 체리자두였다이제 거창 하면 사과가 아니라 체리자두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성배23. 06. 19 · 읽음 1,245

관측 이래 최장의 장마, 역대 가장 빠른 더위와 가장 높은 기온 혹은 낮은 기온, 따듯한 겨울, 도 넘은 더위의 여름, 덥거나 추운 봄과 가을 등, 매년 갱신되는 계절의 수식어를 보며 미래를 생각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이 눈에 띄게 바뀌니, 당장 수년 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을지조차 나는 예상하기 힘들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귤은 제주와 남단에서 나고, 사과는 전남에서까지 나던 시절은 이제 바뀌었고, 또 바뀌어 가고 있다. 사과나 배 같은 온대성 작물이 빠르게 북진하고, 이전에 본 적 없던 열대 과일이 정착하고, 계절의 경계는 모호해지는 등의 모습으로. 앞으로 3년, 5년, 10년 뒤에 우리는 무엇을 찾고, 무엇을 먹으며, 어떤 작물의 이름으로 각 지역을 기억할까? 당장 거창은 사과 대신 체리자두로 기억되려 하고 있는데.

ⓒ iStock/Anusak Panyawai

‘나디아’라는 본이름을 지닌 체리자두는 호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 정착한 신작물이다. 자두 품종 중 하나인 블랙 앰버와 체리의 품종 중 하나인 슈프림을 교잡해 얻은 품종으로, 1999년에 태어나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검증 기간을 거친 끝에 2012년에 품종 보호 출원 등록을 마치고 대체 작목으로써 보급되기 시작했다. 최초 보급 대상지는 경기도 안성시와 경상남도 거창군. 여기서부터는 내가 2년 전에 만났던 거창군의 한 체리자두 농부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겠다.

나디아 자두의 보급 목적이 과수 대체 작목이라는 점에서, 거창군에 도입된 이유 역시 나디아 자두가 새로운 소득 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거창군은 큰 일교차와 질 좋은 토양 덕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특산물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거창 고랭지 사과와 거창 딸기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장사꾼에게도 인정받는 작물로 꼽힌다. 하지만 거창군도 이상 기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특히 사과는 날씨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생산량과 품위가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던 것이다.

“지금도 거창은 사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오래전부터 기후 변화로 인해 갈수록 떨어지는 사과의 생산성에 신음하는 목소리가 가득했어요. 과거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게 보였으니까요. 저는 이를 간과할 수 없었고 결국 찾기로 했어요. 이제 막 시작한 농부의 삶을 최대한 오래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디아, 아니 체리자두는 제가 찾은 방법이었죠.”

2020년부터 연을 이어가고 있는 거창군의 한 체리자두 농부의 말이다. 회사를 은퇴하고 사과 농장을 인수할 당시 돌던, 사과의 생산성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소문을 직접 농사를 지으며 체감한 농부는 대체 작물을 찾기 시작해 2013년에 처음 체리자두를 식재했고, 지금까지도 7월이면 활발하게 자두를 생산해 단골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 전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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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변화는 그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급진적인 기후 변화에 지금 수많은 농부가 새로운 작물을 찾아 기존의 것을 갈아엎고 새로운 것을 심고 있다. 이유는 한결같다. 먹고살기 위해, 농부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다.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는 이유다. 설령 그 땅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떨치던 작물이라 해도, 농부가 농부로서 살기 위해 필요하다면 당연히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표나지 않는 아쉬움만 가질 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를 인터뷰할 당시에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전통적인 사과 농사를 저버리면서까지 대체 작물을 선택해야 했던 이유를. 그건 은퇴 후에도 가족을 생각하고 농부로서 더 오래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고, 기후 변화로 모든 것이 이전 모습을 상실하는 와중에도 농부라는 직업이 멸종되지 않도록 지키려는 수호 정신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쉬워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조차 파괴만 일삼는 나에게는 외람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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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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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성배입니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연재자이며,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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